기업 이탈에 청년도 脫고향… ‘서울 블랙홀’에 광역시도 위태 [심층기획-광역시 지역소멸 위기 고조]

해운대구 등 부산 4개구 소멸위험지역
가장 활력 넘치던 해운대구 포함 충격
지역 경제 한축 YK스틸 2024년말 충남 이전
부산시, 약 1000명 일자리 사라질 것 예상

대구 동구·대전 동구, 빈집 갈수록 늘어나
수도권 인천도 옹진군 중심 경고등 켜져
지자체 뿐 아닌 중앙 차원 특단 대책 절실
“지방서도 능력 꽃피울 융복합 전략 필요”

#1 부산 경제의 한 축을 떠받쳤던 YK스틸(옛 한보철강)은 창사 58년 만인 올해 연말 충남 당진시로 본사와 공장을 모두 이전한다. 국내 5위 철강회사인 YK스틸은 연간 118만t의 철강을 생산하며, 2022년 기준 827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곳에 근무하는 직원만 400명에 달하고, 협력업체는 100곳이 넘는다. 시는 YK스틸 이전으로 약 1000명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 수도권과 인접한 대전 중구는 최근 지역소멸위험지역에 포함됐다. 20∼39세 가임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값인 소멸위험지수가 0.486으로 소멸위험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2014년 26만1000명이었던 대전 중구 인구는 올해 6월 말 기준 22만3000명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은 13.4%에서 23.0%로 급증했다.

 

상대적으로 많은 일자리와 교육·문화 시설 등으로 비수도권의 ‘인구 블랙홀’ 역할을 담당했던 광역시에도 지역소멸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2차산업에 의존한 지역기업들의 도산과 이전 등 일자리 부족으로 청년인구가 대거 서울 등 수도권으로 쏠리면서다. 전문가들은 수도권에 몰려 있는 기업이나 기관들이 비수도권 거점지역에 분산될 수 있도록 중앙정부 차원의 세제 혜택이나 행·재정적 특례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12일 해무가 짙게 낀 부산 해운대구 일대 모습. 연합뉴스

◆해운대구까지 소멸의 그림자

14일 한국고용정보원의 ‘2024년 3월 기준 소멸위험지역 현황과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부산 16개 구·군 가운데 북구와 사상구, 동래구, 해운대구 4곳은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됐다. 서부산권인 북구와 사상구는 동부산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노후산업지역이라 쉽게 납득이 가지만, 동래구와 해운대구를 소멸위험지역으로 포함한 것에 대해 부산시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해운대구는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즐겨 찾는 국제관광도시이자 부산에서 가장 활력이 넘치는 곳이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해운대구 전체 인구는 38만448명이다. 이 중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7만9666명으로 전체의 20.9%를 차지한 반면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68.3%(25만9839명)에 불과하다. 해운대구 합계출산율은 0.65명으로 전국 평균(0.72명)은 물론 부산 지역 평균(0.66명)보다 낮다. 해운대구가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 요인으로는 과거 정책이주지역인 서부 반여·반송동과 주요 관광지인 동부 좌·우·중동의 개발 불균형 격차가 꼽힌다.

기자가 13일 찾은 반여동과 반송동은 해운대구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한적’했다. 거리에 도통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대로변 상가는 영업하는 곳보다 비어 있는 점포들이 더 쉽게 눈에 띄었다. 60대 편의점 주인은 “젊은 사람들은 죄다 직장을 찾아 도심으로 서울로 빠져나가고, 나이 든 사람들만 남았다”고 전했다.

서부산권 상황은 더 심각하다. YK스틸이 60년간 터를 잡고 영업했던 구평동을 비롯한 사하구는 부산에서 대표적인 낙후지역으로 꼽힌다. 2010년대 들어 공장 주변에 아파트단지가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입주민들은 YK스틸에서 발생하는 소음·분진·악취에 대한 집단민원을 넣기 시작했다. 한 해 300건이 넘는 민원이 접수되자 결국 YK스틸은 충남 당진 석문국가산업단지로의 이전을 결정했다. 사하구에서 50년째 살고 있다는 주민 박명국씨는 “부산 인구가 지속적으로 줄면서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는데도, 오랫동안 지역경제를 떠받쳐온 토종기업까지 쫓아내니 인구가 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구 동구 도평동 도심 내 한 빈집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대문이 심하게 녹슬어 있다. 대구=김덕용 기자 

◆대구·대전도 인구유출 비상

대구도 예외가 아니다. 대구 동구도 이번에 소멸위험지역으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 8일 찾은 대구 동구 도평동. 좁은 골목 사이 수십 년 된 구옥들이 늘어서 있었다.

 

굳게 걸어 잠근 대문 너머 무너져내린 집과 담벼락 사이로 무성하게 자란 잡초가 눈에 들어왔다. 가스·수도요금 체납 고지서가 꽂힌 우편함 등 곳곳에서 오랫동안 사람이 산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도평동 인구는 2020년 6월 기준 4237명에서 2022년 4079명으로 줄었고, 올해는 3704명으로 전년보다 9.1%가량 감소했다. 마을에서 만난 70대 주민 이순환씨는 “마을에 빈집이 늘어나고 있어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대전에선 중구와 동구가 소멸위험지역에 포함됐다. 9일 대전 중구 문화동 일반 주택과 빌라가 빼곡히 들어서 있는 동네 언덕 끝에 지붕 없이 방수비닐 천장으로 덮인 빈집이 눈에 들어왔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둔 뒷집 역시 빈 채로 수년째 방치돼 있었다. 50대 주민 김성래씨는 “빈집이 된 지 10년이 넘었는데 주인이 이사 가고 몇 차례 창고처럼 물건을 쌓아두기도 했다”며 “지금은 완전히 비어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대전 동구 인구는 20만명선 붕괴가 코앞이다.

대전 중구 문화동 빈집의 무너진 지붕에 방수비닐이 덮여 있다. 대전=강은선 기자

수도권도 지역소멸 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인천은 연평면이 속한 옹진군을 중심으로 지방소멸 경고등이 켜졌다. 옹진군 인구는 2017년 11월 2만1594명으로 최고점을 찍었다가 올 5월 2만169명으로 내려앉았다. 연평도 주민 50대 박모씨는 “아들들이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모두 도시로 내보냈다”고 말했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인구 늘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부산 해운대구는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낙후된 반여·반송 지역의 주거 인프라 및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청년일자리 확산을 위한 ‘해운대형 일자리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대구와 대전도 소멸 속도를 늦추기 위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결혼하고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 마련, 골목상권 활성화 및 지역화폐 도입·운영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지자체의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것이 중요하지만, 지방소멸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실질적인 균형발전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상호 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지방에서도 다양한 인재들이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도록 산업-교육-주거-복지-문화를 일자리와 연계하는 융복합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은 “지방에 행정 권한을 대폭 이양하는 연방제 수준의 분권을 통해 국가의 경쟁력이 지방에서 창출될 때 지역소멸에서 벗어날 수 있고, 진정한 지방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