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입까지 차오른 상황에서 이젠 인중까지 올라왔다고 보면 되죠. 인상률이 역대 두 번째로 낮다고 해도 자영업자들이 체감하는 위기는 그만큼 크다는 말이에요.”
14일 서울 동작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며 직원 8명을 고용하고 있는 임모씨는 내년 최저임금 ‘1만원 돌파’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코로나19 시기였던 2021년 1.5%에 이어 ‘1.7%’ 인상은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자영업자들은 배달 중개 수수료 인상 등 악재 속에서 최저임금 인상 여파가 적지 않다고 토로한다.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는 12일 내년 최저임금을 올해(9860원)보다 170원(1.7%) 오른 시간당 1만30원으로 정했다. 월급 기준으로 환산하면 209만6270원이다. 최저임금 1만원 돌파는 1988년 제도 시행 뒤 37년 만이다.
이번 주까지 늘어질 것으로 예상됐던 심의는 9일 9차 전원회의에서 노사의 최초안 제시 뒤 나흘 만에 속전속결로 마무리됐다. 노사 모두 이런 결과에 불만을 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입장문에서 “한계 상황에 직면한 우리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절박함을 고려하면 동결돼야 했다”고 밝혔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1.7%는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인상으로 사실상 실질임금 삭감”이라고 비판했다. 서울 강남구 한 중소기업에서 사무보조원으로 주 20시간을 일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라는 박소희씨는 “‘최저임금 1만원 돌파’에 대한 과한 의미부여는 호들갑으로 느껴진다”며 “햄버거 세트 하나도 8000원이 넘는 마당에 최저임금이 1만2000원은 돼야 살 만할 것 같다”고 푸념했다.
자영업자들은 이미 한계 상황인 경영 여건이 악화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임씨는 “오전 10시 출근해 오후 10시 퇴근하는 직원 기준으로 월급 320만원을 주고 있는데 내년부터는 못해도 340만원을 줄 생각을 하니 고민이 크다”며 “월세, 재료값 등 안 오른 게 없다”고 했다. 그는 배달 중개 수수료에 더해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하소연했다. 앞서 배달의민족은 다음 달부터 ‘배민1 플러스’ 서비스에 가입한 입주업체에 주문 한 건당 9.8%로 수수료를 3%포인트 올린다고 밝혔다. 임씨는 “갈비탕 한 그릇이 1만6000원인데 할 수 없이 배민1 플러스에 올려놓은 가격은 2만원”이라며 “메뉴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만연한 ‘쪼개기 알바’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서울 동작구에서 직원 2명과 함께 카페를 운영하는 고모씨는 “170원 오른 거라곤 하지만, 주휴수당까지 생각하면 체감은 그 이상”이라며 “주 15시간 일하면 주휴수당을 지급해야 하니까 주당 근로시간을 줄이려는 사장님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노·사·공은 남겨진 숙제로 일제히 ‘제도 개선’을 꼽는다.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는 노동계와 경영계 간 의견이 갈리는 지점이 있지만, 지나치게 소모적이며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는 모두가 공감을 표하고 있다.
5년간 최임위 공익위원으로 참여한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 제도는 노사가 모두 진영 논리를 대변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양쪽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전문가 중심으로 논의 구조를 바꾸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공익위원들이 심의 촉진구간 설정 시 적용하는 산식도 개선점으로 꼽힌다. 이번에 공익위원들은 심의 촉진구간 상한선을 설정하며 ‘경제성장률(2.6%)소비자물가상승률(2.6%)취업자증가율(0.8%)’을 근거로 했다. 반면 지난해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3.4%)+생계비 개선분(2.1%)’을 적용해 5.5%를 상한선으로 제시했다. 민주노총은 성명에서 “공익위원들은 제 입맛에 맞는 제시안이 나올 때까지 양측에 수정안 제시를 요구하다 종국엔 근거 없는 산출식으로 심의촉진구간을 설정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