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과 동시에 분리된 경계
수풀 한 더미를 사이에 둔 하늘 위에 해와 달이 또렷이 뜬다. 이재석(35)은 낮밤을 동시에 품은 이 풍경에 ‘연결과 동시에 분리된 경계’(2022)라는 이름을 붙였다. 전경을 점령한 것은 텐트의 뼈대를 이루는 가느다란 쇠기둥과 팽팽하게 당겨진 로프들이다. 비틀대는 자세로 뿌리내린 여섯 개의 골조가 복잡하게 중첩된 탓에 천을 씌워 각 텐트를 완성하기란 어렵게만 보인다. 서로 단단히 묶인 선들은 하나의 연결된 덩어리인 한편 각자의 독립된 몸으로서, 장면을 꿰매듯 엮어내는 동시에 수많은 조각으로 분열시킨다.
“군용 텐트를 순서에 따라 조립하며 그 구조의 안팎에 놓인 ‘나’에 대해 고민했다. 텐트를 이루는 부품들은 단독으로서는 쓸모없는 존재다. 개별 부품들은 비상시 설치와 운반에 용이하도록, 가장 효율적으로 전체에 기여할 수 있도록 여러 차례 자신의 모습을 정제했을 것이다.”
이재석의 화면 속 자연의 모습은 어딘가 생경하다. 아마도 처음부터 무엇도 자연이지 않아서, 그리고 동시에 모든 것이 자연이라서 그렇다. 따뜻한 인간의 골격을 차디찬 쇠기둥에 투영하는 시도는 한편으로 일련의 비인간적 체계로부터 유기적 자연의 원리를 발견하고자 응시하는 것이다. 초현실주의자의 태도를 닮은 관념의 세계 속 군용 텐트의 표피는 피부였다가 산등성이가 되고, 미지의 우주가 되고, 다시 커다란 바다가 된다.
극도로 정제된 형태와 색채의 도상들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며 반드시 제 윤곽 내에 머무른다. 이 섬세한 요소들은 주변부에 최소한의 그늘만을 드리우며 오직 자신의 양감을 호소하는데, 저마다의 생김새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도리어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현실세계의 대상들과 무척 닮은 한편 익숙한 물리적 법칙에 조금씩 어긋난 방식으로서 평면 위에 배열된 탓이다. 오래된 삽화처럼, 구체적인 우화처럼, 신비로운 증언처럼 말이다.
이재석은 1989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목원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갤러리 바톤(2023), 챕터투(2023), 디스위켄드룸(2022), SeMA 창고(2021), 학고재 디자인 프로젝트 스페이스(2021), 아트 스페이스 128(2020), 갤러리 밈(2020), 이응노미술관 신수장고 M2(2018)에서 개인전을 선보였다. 그간 아트센터 화이트블럭(2024), 울산시립미술관(2023), 일민미술관(2023), 광주시립미술관(2022), 스페이스K(2020), 대전시립미술관(2019) 등 주요 미술관이 개최한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2022년부터 2023년까지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 레지던시에 입주하여 작업했다. 올해 쉐마미술관과 대전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전시에서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대전시립미술관 등의 기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 중이다.
박미란 큐레이터, 미술이론 및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