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격에 누가 배 사 먹어요. 조금 더 보태 수박 먹지.”
지난 14일 오후 2시쯤 강원도 강릉시 한 마트. 장을 보러 온 피서객이 과일 코너를 지나며 이같이 말했다. 사과·복숭아 등 과일을 들었다가 가격표를 보고 놀라 내려놓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친구들과 함께 장을 보던 피서객들은 “휴가철이라서 그런가? 너무 비싸다”라며 가격표를 꼼꼼히 보고 있었다. 한 젊은 부부는 배를 보고 “배가 원래 이렇게 비싼 거야”고 서로 재차 묻곤 3개 묶음 배 가격도 살폈다. 3개 묶음 배 가격은 35500원이었다.
가족과 함께 캠핑용 고기를 사러 마트에 방문했다는 40대 김모씨는 “물가가 무서울 정도다. 30만 원 갖고는 장을 볼 수가 없다”라며 빈 쇼핑 카트를 가리키며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이어 “대형 마트라고 해서 찾아왔는데, 이정도니 다른 곳은 어떻겠냐”라며 “상추가 200g에 3200원이다. 고기에 상추 싸 먹는 말이 그냥 나왔겠나”라며 인상을 찡그렸다.
고물가 속 필수 먹거리 가격 오름세가 좀처럼 기세가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폭우를 동반한 긴 장마, 역대 최고 기온을 갈아치울 정도의 폭염이 연속으로 이어져 필수 장바구니 품목인 신선식품을 중심으로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오름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빈 장바구니를 들고 있던 70대 이모씨는 이날 쌈 채소가격을 보고 잠시 고민하더니 내려놓았다. 이씨는 “장마라도 해도 그렇지 이렇게 비싸면 누가 사 먹겠나”며 “삼겹살도 오르지 배추, 상추, 참외, 사과 다 올랐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돈 없는 늙은이들은 이제는 삼겹살도 쉽게 못 먹는다”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과와 배를 중심으로 과일값 고공행진이 지속되고 있다. 석유류와 외식 등 일부 품목의 물가도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16일 통계청 따르면 6월 소비자물가동향에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3.84(2020년=100)로 작년 같은 달보다 2.4% 올랐다. 지난해 7월(2.4%) 이후 1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상승률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1월 2.8%에서 2∼3월 3.1%로 높아진 뒤 지난 4월(2.9%)부터 다시 2%대로 내려앉았다. 품목별로는 농·축·수산물이 1년 전보다 6.5% 상승했다. 수산물(0.5%)과 축산물(-0.8%)은 안정적 흐름을 보였지만, 농산물이 13.3% 상승한 탓이다.
사과(63.1%)와 배(139.6%)는 등 과일 가격 강세는 지난달에도 계속됐다. 토마토(18.0%), 고구마(17.9%) 등 품목의 오름세도 두드러졌다. 특히 김은 28.6% 상승해 1987년 12월(34.6%)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석유류 역시 4.3% 올라 전월(3.1%)보다 오름세가 확대됐다. 2022년 12월 6.3% 증가한 이후 18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이다.
공미숙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작년에 국제유가가 낮았던 기저효과의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기여도 측면에서는 농산물이 물가상승률을 0.49%포인트(p) 끌어올렸고, 외식을 비롯한 개인 서비스 물가도 0.93%p 인플레이션 요인으로 작용했다. 석유류의 기여도는 0.16%p였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 지수들은 2%대 초반까지 상승 폭이 둔화했다.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는 작년 동월 대비 2.0% 올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방식의 근원물가 지표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는 2.2% 상승했다.
자주 구매하는 품목 위주로 구성돼 체감물가에 가까운 생활물가지수는 2.8% 상승했다. ‘밥상 물가’와 직결되는 신선식품 지수는 작년보다 11.7% 오르며 높은 증가세를 이어갔다. 신선식품 지수는 작년 같은 달보다 11.7% 올랐다. 신선어개(-1.4%)와 신선채소(-0.8%)는 감소했지만, 신선과실이 31.3% 증가했다.
공미숙 심의관은 “국제유가 변동과 유류세 일부 환원, 날씨에 따른 농산물 가격 변화 등 불확실성은 여전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