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총선에서 승리한 좌파 정당 연합체 신인민전선(NFP)이 총리 후보자 지명 등 정부 구성에 관한 논의를 중단했다. 파리 올림픽 개막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올림픽 기간 정쟁을 멈추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국도 여소야대 정국이던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야당들이 먼저 정쟁 중단을 선언한 바 있다.
올림픽 성화가 수도 파리에 입성한 뒤 축제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지난 총선 기간 광범위하게 불거진 증오와 분열도 차츰 가라앉는 모양새다.
15일(현지시간) dpa 통신에 따르면 NFP에 속한 정당들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와 사회당은 총선 결과를 반영한 새 정부 구성에 대한 협의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총선 결과 NFP는 193석을 얻어 원내 1위 세력으로 올라섰다. 프랑스 헌법과 기존의 정치 관행상 NFP가 총리를 맡는 것이 맞긴 하다. 문제는 총리 후보자 지명을 놓고 LFI와 사회당이 맞서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당은 전직 대통령 중 프랑스와 미테랑, 프랑스와 올랑드 등을 배출한 관록의 정당이다. 그들은 현 사회당 대표 올리비에 포르(55)를 총리 후보자로 추천했다. 반면 LFI는 자기네가 NFP 내부에서 의석수가 가장 많다는 이유를 앞세워 포르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면서 장 뤽 멜랑숑(72) 대표를 비롯한 LFI 측 인사들 중에서 총리가 나와야 한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실제로 멜랑숑은 총선 직후 “내가 총리를 맡아 정부를 이끌겠다”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향해 자신을 총리에 임명할 것을 촉구했다. 물론 마크롱은 멜랑숑의 극좌 성향을 문제 삼아 단칼에 거절했다. 사실 멜랑숑은 독재자에 가까운 권위주의 정치인으로 좌파 내부에서도 인기가 별로 없다.
이에 따라 오는 7월26일 시작해 8월11일까지 이어질 올림픽 기간에는 총리 임명이나 정부 구성을 둘러싼 정쟁이 자취를 감출 전망이다. 마크롱이 임명한 가브리엘 아탈 현 총리가 이끄는 정부가 올림픽을 치르게 되는 것이다. 국가적 대사를 앞둔 프랑스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다만 아탈 정부는 ‘시한부’라는 분명한 한계를 안고 있다. 총선 후 아탈이 사표를 제출하자 마크롱은 ‘정국이 혼란하니 당분간 정부를 이끌어달라’는 취지로 이를 반려한 바 있다. 지난 총선에서 마크롱의 중도 집권당은 164석을 얻어 2위에 그쳤고, 극우 성향 국민연합(RN)은 예상에 못 미친 143석으로 3위를 차지했다. 하원 전체 577석의 과반(289석 이상)을 확보한 단일 세력이 없는 셈이다. 현재 마크롱은 중도 집권당을 중심으로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까지 포괄하는 연립정부 구성을 시도하고 있으나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프랑스는 급격히 올림픽 축제 분위기로 옮겨가고 있다. 흔히 ‘바스티유 데이’로 불리는 7월14일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을 맞아 올림픽 성화가 파리 시내에 입성한 것이 계기가 됐다. 총선 선거운동 기간 프랑스를 지배한 극단적 분열과 증오에 환멸을 느낀 상당수 국민이 환호하는 모습이다. 현재 70세인 한 파리 시민은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시가지를 달리는 성화를 보니 눈물이 날 것 같다”며 “(선거가 치러진) 지난 몇 주일 동안 참담한 심정이었는데 이제는 기쁘다”고 말했다.
파리 시내 성화 봉송에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 스타 방탄소년단(BTS)의 진도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AP는 “케이팝의 아이콘 진이 14일 저녁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성화를 봉송했는데 이는 엄청난 수의 군중을 끌어 모았다”고 소개했다. 한 20대 여성은 AP에 “솔직히 올림픽엔 거의 관심이 없지만 진을 보기 위해 친구들과 (성화 봉송 현장에) 달려갔다”며 “그(진)는 매우 귀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