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유세 현장에서 발생한 트럼프 전 대통령 암살 시도에 세계는 경악했다. 암살범은 20대 백인 청년, 공화당 등록 당원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총알이 오른쪽 귀 윗부분을 관통하면서 트럼프는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이번 사건은 미국 정치의 극단적 양극화와 민주주의 위기의 심각한 징후라 할 수 있다.
정치 양극화는 세계적 현상으로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치적 양극화가 분열과 증오로 덧칠해지면서 정치 테러와 폭력으로 이어지는 일도 흔하다. 2022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전 자위대원이 쏜 사제 산탄총에 맞아 사망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올해 1월 부산 방문 당시 흉기로 목 부위를 공격당했고,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도 벽돌로 여러 차례 머리를 가격당하는 공격을 받았다. 2006년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커터칼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트럼프 암살미수 이후 아마도 세간의 가장 큰 관심은 그것이 대선 레이스에 미칠 영향일 것이다. 트럼프는 피습 직후 피를 흘리면서도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쥔 채 ‘싸우자’고 외쳤다. 특유의 쇼맨십을 여지없이 발휘해 미국인들의 뇌리에 오래 남을 ‘스트롱맨’ 이미지를 굳힌 명장면을 연출했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신이 트럼프를 구했다’며 환호를 보냈다.
이처럼 트럼프 지지 세력의 결집 효과로 그에 대한 지지는 더 오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번 사건은 그동안 트럼프의 가장 심각한 약점으로 꼽혀 왔던 사법 리스크를 잠재우고 그에게 대선 승리를 굳히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평가다. 의회 난입사건 배후 조종과 선거 결과 전복 시도 혐의를 받으면서 민주주의 파괴의 악동으로 간주되던 트럼프가 일거에 분열정치의 피해자, 희생자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바이든 사퇴 논란 가운데 자중지란 조짐을 보이던 민주당으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다. 바이든을 괴롭히는 고령 논란, 최근 TV토론에서 보여준 취약한 모습, 인지력 저하 논란 등 악재가 겹쳐지는 상황에 비추어 ‘천운이 함께하는’ 트럼프의 강력한 지도자 이미지는 더욱 선명해 보인다.
트럼프 재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는 가운데 세계는 이제 트럼프 2기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한국은 당장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증액과 한미 간 무역수지 불균형 시정, 대중국 경제 압박 동참 방안이 고민이다. 한국은 트럼프 1기 때 갑자기 방위분담금을 5배 올려 달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에 당혹했던 경험이 있다. 트럼프는 최근 타임지 인터뷰에서 한국이 방위비를 더 분담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음을 재차 시사했다.
이런 우려 가운데 최근 방한한 미국우선주의연구소(AFPI) 인사들은 세종연구소 주최 간담회에서 그간의 우려와는 달리 트럼프가 복귀하면 윤석열 대통령과는 오히려 좋은 협력관계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AFPI는 트럼프의 생각을 가장 잘 아는 인물들이 포진한 싱크탱크로 평가된다. 간담회에서 프레드 플라이츠 부소장은 엘브리지 콜비처럼 미국은 모든 역량을 중국에 집중하고 동맹은 스스로의 방어를 책임져야 한다는 시각은 완전히 잘못된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주한미군은 여전히 대북 억지력의 핵심이며, 지금처럼 복합적 위협이 존재하는 상황에선 1개의 전쟁(중국)뿐 아니라 다수의 분쟁도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캠프데이비드 이후 한·미·일 안보협력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로선 다행스러운 일이다.
트럼프 2기가 우리가 걱정하던 것만큼 미국의 이익만을 앞세운 막무가내식 계산정치가 아니라 좀 더 현실주의적 톤으로 재조정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세계의 안정과 번영뿐만 아니라 한미관계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지금은 트럼프 재선 가능성에 패닉할 것이 아니라 예상 가능한 여파를 미리 진단하고 대비를 시작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