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의 리일규(52) 정치담당 참사(참사관)가 지난해 11월 아내와 자녀를 데리고 망명해 한국에 정착한 사실이 확인됐다. 2016년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의 귀순 이후 남으로 온 북한 외교관 중 가장 높은 직급이다. 2013년 미신고 무기를 싣고 가다 파나마에 억류된 북한 선박 청천강호 문제를 해결한 공로로 김정은 표창장까지 받은 인물이다. 2019년 조성길 이탈리아 대사대리, 류현우 쿠웨이트 대사대리에 이은 그의 귀순은 엘리트들마저 등을 돌릴 정도로 북한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리 참사는 지난 2월 한국과 쿠바의 국교정상화가 이뤄지기 3개월 전에 망명을 했다. 언론과 인터뷰에서 밝힌 망명 동기는 북한 체제 모순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출신 성분이 사무로 노동자나 군인에 비해 좋지 않은 그는 권세 있는 집안 자식들이 몰려 있는 외무성에서 불평등한 평가를 받고 좌절과 분노를 느꼈다고 한다. 평양에 갔을 때 외무성 대표부지도과 부국장이 뇌물을 요구한 것을 자금 여유가 부족해 ‘후에 보자’는 식으로 미루자 소환 시도 등 불이익을 받았고, 경추 손상으로 멕시코로 가서 치료받게 해 달라고 요청하자 바로 거부당하기도 했다. 모든 인민이 평등하다는 선전은 허구일 뿐 비리와 부조리로 가득찬 체제임을 새삼 일깨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