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또?…복날 오리 먹고 쓰러진 주민들 위세척해보니 [사건 속으로]

초복날 봉화서 오리고기 나눠먹고 중태…피해자 4명
위서 살충제 성분 나와…경찰 “누가 고의로 넣은 듯”
경북서만 ‘농약 음식물 사건’ 네 번째…범인 추적 중
지난 15일 경북 봉화군의 한 복지관에서 주민 2명이 오리고기를 먹은 뒤 갑자기 쓰러졌다는 신고가 접수돼 119 구급대원들이 출동한 모습. KBS 보도화면 갈무리

 

초복에 오리고기를 나눠 먹고 중태에 빠진 마을 주민들에게서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경찰은 누군가 고의로 농약 성분을 넣은 것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경북에서 2018년 포항 농약 고등어탕 사건 이후 6년 만에 ‘농약 음식 사건’이 발생하며 유사 사건들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

 

16일 경북 봉화경찰서 등에 따르면 전날 경북 봉화군 봉화읍 한 마을 식당에서 오리고기를 나눠 먹고 심정지와 근육 경직 증세를 보인 60~70대 여성 3명의 위에서 농약 성분이 나왔다. 이들과 5인석에 합석했던 다른 여성 한명도 봉화군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상태가 악화해 이날 오전 10시14분쯤 안동병원 응급실에 이송됐다.

 

현재 병원에 입원해 치료 중인 3명과 이날 이송된 1명은 호흡 곤란과 침 흘림, 근육 경직 등의 초기 증상을 보였다. 모두 살충제 성분인 유기인제를 먹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으로, 해당 성분은 안동병원 의료진이 3명의 위세척액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정밀 감정을 요청한 결과 확인됐다.

 

환자들 위세척액에서는 살충제 성분인 유기인제를 비롯 유기염소계 엔도설판 약물이 검출됐다. 해당 약물은 해독제가 없어 몸 속에서 자연 분해되기를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다. 의료진은 국과수에 소변과 혈액 표본도 넘겼다. 

 

유기인제는 음식에 미량으로 섞인 수준으로는 검출될 수 없는 성분이다. 이런 정황을 바탕으로 병원 측은 “(상당량의) 약물 섭취가 확정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상태”라고 가족들에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경북 봉화군의 한 경로당에 노란색 출입금지 테이프가 둘러져 있다. MBC 보도화면 갈무리

 

전날 입원한 3명 중 1명은 심정지 상태에서 병원으로 옮겨져 맥박은 돌아왔으나 여전히 의식이 없는 상태다. 다른 2명도 의식이 없는 중한 상태다. 이날 입원한 다른 1명은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라고 경찰은 밝혔다.

 

앞서 전날 오후 1시50분쯤 봉화읍에 있는 한 식당에서 오리고기를 구워서 나눠 먹은 경로당 회원 41명 중 3명이 심정지, 의식저하 등의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옮겨졌다.

 

메뉴는 익힌 오리불고기였고, 반찬은 열무김치와 오이무침 등 채소 위주였다. 주민들은 테이블에 있는 오리고기를 각자 덜어서 먹는 방식으로 식사했는데, 피해자 4명은 식당에 늦게 도착해 가장 마지막에 식사를 시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4명은 식당 같은 자리에서 식사한 뒤 경로당에 들렀고, 이후 각자 흩어져 다른 곳에서 같은 증상을 보이며 쓰러졌다. 이들 가운데 2명은 경로당 회장과 부회장으로 파악됐다. 

 

당초 식중독을 의심했던 경찰은 범죄 정황이 드러나자 폐쇄회로(CC)TV를 분석하고 탐문을 진행하는 등 본격 수사에 나섰다. 경찰 관계자는 “병원 측에서 1차 검사 결과를 받은 상태로, 누군가 고의로 음식에 농약을 넣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며 “용의자를 추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 과거 ‘농약 테러’ 사건 주목…주민 간 불화가 주원인

할머니 6명이 숨지거나 중태에 빠진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 국민참여재판이 실시된 지난 2015년 12월7일 대구지법에서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모(82)씨가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해당 사건이 알려지며 과거 유사 사건들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주민들이 모인 장소에서 먹은 음식물이나 음료에 농약이 검출된 점 등이 이번 사건과 흡사하다.

 

2018년 4월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농약 고등어탕 사건’은 당시 주민들이 함께 먹으려고 끓여 놓은 고등어탕에 저독성 농약 150㎖가량이 발견돼 충격을 준 사건이다. 농약을 넣은 범인은 전직 부녀회장으로, 신임 회장 등이 자신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등 상황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2016년 3월 경북 청송군 현동면 한 마을회관에서는 냉장고에 든 소주를 나눠 마신 주민 2명 중 1명이 숨지고 1명이 중태에 빠졌다. 유력 용의자는 같은달 경찰의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앞두고 자신의 축사 부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용의자와 마을 주민 간 불화가 있었다고 알려졌다.

 

경북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은 지난 2015년 7월14일 초복 다음날 발생했다. 상주 한 마을회관에서 할머니 7명 중 6명이 냉장고에 든 사이다를 나눠마셨다가 2명이 숨지고 4명이 중태에 빠졌다. 범인은 당시 유일하게 사이다를 마시지 않은 박모(91)씨로, 그는 현재 국내 최고령 무기수로 복역 중이다.

 

상주와 청송 사건에서는 당시 판매가 금지된 고독성 농약 ‘메소밀’ 성분이 검출됐다. 메소밀은 주로 진딧물 방제에 쓰이던 원예용 살충제로 독성이 강해 치사율이 50%에 이른다. 메소밀이 사용된 2012년 ‘함평 독극물 비빔밥 사건’, 2013년 ‘보은 콩나물밥 독극물 사건’은 1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