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정을 기념하는 제헌절인 17일 환경단체와 야외 근무시간이 긴 노동자들이 기후변화로 인해 폭염과 폭우가 심해질수록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을 법적으로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이날 서울 중구 민주노총 중회의실에서 ‘기후재난 당사자의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 요구’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헌법 제34조에 따라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후변화로 인해 폭염일수와 집중호우는 늘어나고 있다. 이밖에도 태풍, 산불, 산사태 등 각종 재해 위험도 높아진다. 이 단체는 “기후재난은 사회 가장 낮은 곳부터 잠식한다”며 “기후불평등을 낳는 사회구조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건설현장 노동자, 배달라이더, 가스점검원 등 실내에서 일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참석했다. 건설현장 옥외노동자인 박세중씨는 “물·휴식·그날이라는 고용노동부의 ‘3대 원칙’도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며 “너무 더울 땐 사업주가 작업중지를 결정하고, 제대로 된 휴게시설을 설치하고, 씻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박씨는 “더위를 좀 식혀야 일할 수 있지만, 10층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1층에 있는 휴게실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고 그냥 옆에 망치를 내려놓고 쉰다”며 “먼지 없고 시원한 휴게실에서 제대로 쉬고 세척시설이 마련된 현장에서 씻고 퇴근해 대중교통으로 귀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택배기사인 박상호씨는 “이날처럼 비오는 날, 택배상자가 젖을까봐 자기 우의를 상자에 덮어놓고 일한다”는 택배기사가 아직도 죽는 현실을 서둘러 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씨는 “비가 정말 많이 내린 지난 4일 경북 경산에서 쿠팡노동자가 배송하다가 죽었다”며 “사용자는 현장이 위험하거나 배달이 어려운 상황이면 배송 지시를 멈춰야 하지만 쿠팡은 멈추지 않았고 택배노동자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었다”고 꼬집었다. 이 쿠팡 기사는 폭우에 휩쓸려 실종됐다.
박씨는 “기후위기라며 하루에 물 500mL를 40일 동안 지급하겠다는 것이 택배회사의 대책이고, 이조차 안 주는 회사도 많다”며 “택배기사는 개인사업자고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이유로 택배회사는 자사 노동자가 아니라 하는 게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기후위기 시대에 폭우는 더 심하고 날씨는 더 더울 것”이라며 “누군가는 택배를 받아야 하고 누군가는 배소해야 하지만, 이러다가 (기사가) 다 죽으면 아무도 배송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배달플랫폼 노동자인 홍창의 배달플랫폼노조위원장은 “얼마 전 특수고용 노동자를 대상으로 기후재난 관련 설문조사를 했을 때, 배달노동자의 82.7%가 온열질환을 경험했고 89%는 이상기후로 인해 일을 그만둘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며 “여름에 아스팔트 지열에 차량 열기로 너무 덥고, 비가 오면 당연히 미끄러지는 사고가 많지만 날씨가 안 좋은 날에 배달플랫폼 기업들은 각종 프로모션을 진행하면서 배달노동자가 일터로 나오게 더 유혹한다”고 지적했다. 홍 위원장은 “배달의민족과 단체협약을 통해 기상악화로 인해 배달서비스를 중지할 수 있다는 조항을 만들었지만 강제성이 없다”며 “작업중지권과 그에 대한 보상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15일 발생한 오송참사 희생자 유가족 장성식씨도 참석해 “오송참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재해를 예방하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지 않은 국가의 직무유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헌법 제34조는 ‘국가가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며 “정부는 기후재난 앞에 위태로운 시민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