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앳된 얼굴. 미안해 수근아”…‘채상병 1주기’ 분향소 ‘하늘도 눈물’ [김기자의 현장+]

서울 청계광장 스프링 앞에 2개 동 설치돼
1주기 맞아 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 운영
“수근아, 보고 싶다. 그리고 미안하다”
분향소 찾은 시민들 ‘눈물’

 

“보고 싶다 수근아. 수근이 한을 풀어줘야죠.”

 

‘채 상병 사망사건’ 1주기를 맞아 시민 분향소가 17일 서울 청계광장 조형물 스프링(소라탑) 앞에 2개 동으로 설치된 가운데, 해병대 출신 이모(50대)씨가 고(故) 채상병의 영정 앞에 엎드려 절을 한 이같이 말했다.

 

새벽부터 폭우가 쏟아진 탓에 분향소 바닥은 축축했지만, 찾는 이들은 개의치 않았다. 이씨는 “자식을 잃은 부모님의 심정을 다 헤아릴 순 없었지만, 작은 마음이나 표현하고 싶어 찾아왔다”며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젊은 청년을 허망하게 보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채 상병은 지난해 7월19일 경북 예천군 보문면 미호리 보문교 남단 100m 지점에서 집중호우로 인한 민간인 실종자를 수색하던 도중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이후 실종 지점에서 5.8㎞ 떨어진 지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광화문 인근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회사 동료와 함께 찾은 박모(40대)씨는 “군대가 변했다고 했는데, 25년 전 군대와 달라진 것이 없어 허탈하다”며 “당당하면 특검을 받아 채상병 사건을 규명해야 한다. 이대로 뭉개면 군을 누가 믿겠냐”고 강조했다.

 

17일 서울 중구 청계천광장에 마련된 故채상병 1주기 추모 시민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추모하고 있다.
17일 서울 중구 청계천광장에 마련된 故채상병 1주기 추모 시민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추모하고 있다.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도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 한 채상병을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아들이 입대한 지 갓 3개월에 접어들었다는 김모(50)씨도 “우리 아들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 정말 남 일이 아니다. 아들 생각에 걱정만 태산이다”며 “제발 무사히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부모 마음은 부모만 안다고, 채상병 부모 마음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요”라며 눈물을 계속 훔쳤다.

 

이어 그는 “어른들이 만든 세상, 커 가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어른들이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며 “안타까운 희생에 대한 진실 규명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17일 서울 중구 청계천광장에 故채상병 1주기 추모 시민분향소가 마련돼 있다.

 

강한 빗줄기에도 분향소를 찾는 발걸음이 이어졌다. 분향소에는 예비역연대 관계자들만 있던 분향소가 시간이 흐를수록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하나둘씩 늘었다.

 

수원에서 온 해병대 출신인 김모(30대)씨는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진다. 선배로서 정말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김씨 “목숨을 잃은 후배 채해병을 떠올리면 생판 남이지만, 정말 남 일 같지 않다. 분명히 책임자 처벌을 할 수 있다면 특검뿐만 아니라 어떤 것이든 수용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티셔츠를 입은 794기인 최모씨는 채상병의 영정 앞에서 거수경례를 한 뒤 ‘고맙고 감사하다. 그곳에서 행복해라! 미안하다’라는 추모 글을 게시판에 남겼다.

 

채상병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추모 글.

 

게시판에는 ‘수근아! 거기서는 편안하자!’, ‘수근 후배에게!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어라! 214기 이모씨’, ‘수근아 지금 그곳에서 무엇하고 있니 보고 싶다. 이곳에서 너를 보고 싶어 계속 불러본다’, ‘수근!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빨리 정리할게. 조금만 기다려주시게나 440기 이모씨’ 등의 채상병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추모 글이 이어졌다.

 

한편 ‘채상병’ 분향소는 이날부터 1주기인 19일까지 3일 간 운영된다. 해병대예비역연대는 광화문 광장에 대한 사용 허가를 요청했으나 협의를 통해 청계광장으로 장소가 변경됐다. 서울시는 해병대예비역연대가 청계광장을 사용하는 3일 간의 사용료를 ‘공익적 목적’ 이유로 면제하기로 했다.

 

17일 서울 중구 청계천광장에 故채상병 1주기 추모 시민분향소가 마련돼 있다.

 

앞서 채상병 순직 1주기 추모 행사와 관련해 해병대사령부는 지원 요청을 거절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병대예비역연대는 “해병대사령부에 의장대 지원 요청 공문을 보냈으나 공문이 아닌 통화로 지원 요청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해병대사령부 측은 “해병전우회 총재의 요청이 아니며 진행되는 행사가 많아 지원이 어렵다”는 취지로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해병대예비역연대는 “해병대 지휘관들의 과실로 인해 순직한 해병의 1주기를 추모하는 대의에 해병대 사령부가 무책임한 모습을 보임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