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석―돌이 간직한 우주의 비밀/ 팀 그레고리/ 이충호 옮김/ 열린책들/ 2만5000원
45억년 지구 나이를 24시간으로 압축하면 인류의 역사는 4초도 채 되지 않는다. 문자는 0.1초 전에 발명됐다. 나무는 2시간 전에 뿌리내렸고, 공룡은 1시간15분 전에 나타나 55분 전에 사라졌다. 인류가 역사를 기록하기 전, 지구의 수십억년 세월을 묵묵히 담아온 존재는 암석이다. 다만 암석에 쓰인 지구 이야기는 처음 몇 쪽이 찢겨나가고 중복 인쇄됐다. 판 구조의 힘과 풍화·침식 작용 때문이다.
다행히 태양계가 태어나던 당시와 초기 지구를 증언하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운석이다. 신간 ‘운석―돌이 간직한 우주의 비밀’은 운석의 장대한 아름다움을 들려준다. 운석에는 태양이 막 태어나던 시기뿐 아니라 더 오래된 별들의 흔적까지 남아 있다.
이 책이 쓰인 2020년 기준 알려진 운석은 6만여개다. 떨어지는 장면이 목격된 직후 발견되면 낙하운석, 그렇지 않으면 발견운석이라 부른다. 낙하운석은 1200개도 안 된다. 운석이 지표면에 떨어지면 산소와 빗물, 미생물 군단이 공격해오기에 지구 환경에 오염되지 않은 낙하운석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 몇 배나 비쌀 때가 많다.
인류가 태양계 초기 역사에 대해 알아낸 지식 중 상당수는 1969년 멕시코에 떨어진 아옌데 운석에서 얻었다. 아옌데 운석에는 눈처럼 하얀 암석 조각이 흩어져 있었는데 연구 결과 이 조각은 붕괴하는 성운에서 생성된 최초의 먼지 알갱이였다. 이 하얀 암석 조각을 칼슘-알루미늄 포유물(CAI)이라 부른다.
운석에는 태양계보다 더 오래된 별의 흔적도 들어 있다. 1970∼1980년대 아옌데 운석에서 기묘한 알갱이를 분리했는데, 분석 결과 다이아몬드였다. 이어 나노다이아몬드, 나노 수준의 흑연, 탄화규소 등 기묘한 알갱이들을 추가 발견했다. 이 알갱이들은 태양계 정상 물질과는 다른 극단적 동위원소 조성을 보여줬다. 태양계 밖 다른 곳에서 알갱이들이 결정화됐다는 뜻이다.
이 알갱이들은 부모 별에서 방출된 뒤 긴 성간 공간 여행을 거쳐 우리 성운으로 섞여들었다가 태양과 행성이 만들어지는 동안 고열·충돌·폭격 등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 시카고 필드 박물관의 우주 화학자 팀이 이 별먼지 알갱이들의 나이를 측정하니 일부는 70억년 이상이었다. 이 경이로운 우주 퇴적물 알갱이를 ‘선태양계 입자’라고 부른다. 저자는 인류가 오랜 시간 맨눈으로 별을 봐오다 지난 400년 동안은 망원경으로 바라봤고, 이제는 선태양계 입자 덕분에 현미경 아래에서 별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은 운석의 납 동위원소를 측정하려 애쓰다 우리 주위가 온통 납으로 오염됐음을 발견한 흥미로운 사례도 알려준다. 이 덕분에 유연 휘발유가 퇴출됐다.
운석은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에 대해 많은 답을 알려준다. 인간은 성운의 파편이다. 바깥쪽으로는 망원경, 안쪽으로는 현미경, 뒤쪽으로는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시간의 협곡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존재다. 저자는 우리의 과거는 암석에 기록돼 있지만, 미래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며 책을 끝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