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미 테리 기소, 한·미동맹 손상으로 비화해선 안 된다

한국계 대북 전문가인 수미 테리(한국명 김수미) 사건이 일파만파다. 한국 정부를 위해 불법적으로 일하며 대가를 받은 혐의로 미국 뉴욕의 연방 검찰에 체포·기소된 중앙정보국(CIA) 출신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어제 보석금 50만달러를 내고 풀려났다. 테리 연구원의 혐의는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위반이다. 한국 정보기관에 정보 등을 제공하고 명품 핸드백과 코트, 뒷돈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의 변호인이 “근거 없는 사실 왜곡”이라며 강력히 부인하고 있어 사실 여부는 더 지켜봐야 알 수 있다.

 

그렇더라도 미 정부가 한국계 인사를 FARA 위반으로 체포·기소한 것은 이례적이어서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미 검찰은 테리 연구원을 ‘한국 정부 요원’이라고 적시하고 “한국 정부의 지시를 받아 활동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고 한다. 문제는 공소장에 첨부된 자료다. 우리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테리 연구원과 함께 대낮에 명품매장에서 쇼핑한 뒤 거리를 활보하고, 최고급 음식점에서 식사하는 폐쇄회로(CC)TV 화면까지 제출돼 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한편의 코미디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은밀해야 할 정보기관 요원의 동선이 이렇게 쉽게 노출되다니 이런 국제 망신도 없다. CIA가 테리 사건을 접하고서 수차례 경고를 했는데도 국정원 요원들은 인지조차 못 했다는 얘기까지 나오니 한심하다.

 

테리 연구원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국정원이 정보기관으로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할 때다. 대통령실은 어제 “모두 전임 문재인정부 때 일어난 일로, 관련자들에 대한 감찰과 문책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런 식으로 접근해선 안 될 일이다. 국내외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노무현정부에서 있었던 ‘선글라스 맨 사건’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이번 사건에서도 쇼핑 장면은 주로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9∼2021년에 집중돼 있지만, 다른 건은 윤석열정부 국정원 때의 일이 아닌가. 국정원의 환골탈태가 시급하다.

 

이번 사건이 어느 때보다 돈독한 한·미동맹 관계에 손상이 가는 일로 비화해선 안 될 것이다. 정부는 재판 과정이 상당 기일 걸린다고 해서 손 놓고 있지 말고 외교 문제로 비화하지 않도록 세심히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현대는 정보전쟁의 시대다. 이번 기회를 외교·안보·정보 라인과 업무 활동에 문제가 없는지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