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해군에서 중요성이 한층 강조되는 것이 잠수함이다.
바다 밑에서 움직이는 잠수함은 적군에 쉽게 포착되지 않는 은밀함을 통해 평시에는 전략적 억제력을, 전시에는 강력한 공격력을 발휘하는 무기다.
해양에서 분쟁이 벌어질 위험을 안고 있는 국가들 대부분이 잠수함을 확보하려고 시도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태평양과 대서양, 북극해를 끼고 있는 캐나다도 잠수함 전력 현대화에 뛰어들고 있다. 신형 잠수함 12척을 확보, 바다에서의 위협에 대처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캐나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력증강 사업 중 하나로 꼽히는 캐나다 초계잠수함 프로젝트(CPSP)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모양새다.
600억 캐나다 달러(60조 6000억 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알려진 CPSP에 대해 세계 주요 군함 제조사들이 뛰어들 태세를 갖춘 가운데 한국도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얼음 아래서도 쓸 수 있는 잠수함 원해
캐나다는 지난 1998년 영국에서 빅토리아급 잠수함 4척을 구매해 운용해왔다. 하지만 1980년대에 만들었던 빅토리아급은 노후화가 심해지면서 해상작전에 제약이 발생하고 있었다.
잠수함이 노후화하면 작전을 펼칠 시간적 여유도 줄어든다. 정비 소요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권의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북극해 항로가 열리고, 이를 이용하려는 국가가 늘어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도 캐나다의 고심을 깊게 한다.
북극해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얼음이 녹고 있다. 북극이 현재 세계 평균의 4배나 빠른 속도로 따뜻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얼음이 사라진 북극해는 2050년에는 유럽과 동아시아를 잇는 가장 효율적인 항로로 바뀔 전망이다.
북극해 항로가 열리는 것은 북극해에 군사·경제적 야망을 가진 국가들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실제로 러시아 잠수함이 태평양과 대서양, 북극에서 활동을 늘리고 있고, 중국도 잠수함 전력을 증강하면서 북극해 일대에 조사선이나 경비함을 보내는 사례가 포착되고 있다.
북극해와 직접 맞닿아 있는 캐나다로서는 러시아와 중국의 움직임이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러시아가 북극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거나 북극해 항로를 통제하려 시도할 경우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이에 캐나다는 전략적 의미가 큰 잠수함 전력 확보를 서두르는 모양새다. 잠수함 전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면 북극에서의 주도권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
캐나다 정부는 지난 10일(현지시간) 얼음 아래에서도 활동이 가능한 신형 잠수함 12척을 도입하는 CPSP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방침을 밝혔다. 잠수함을 확보하기 위해 관련 업계와 공식적으로 협력하기 위한 절차를 시작한다는 의미다.
빌 블레어 캐나다 국방부 장관은 “세계에서 가장 긴 해안선을 지닌 캐나다는 새 잠수함 함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캐나다 정부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 참여자의 역량에 대한 추가 정보를 확보하고자 올해 가을쯤 자료요청서(RFI)를 낼 예정이다. 계약 시기는 2027년쯤으로 예상된다.
캐나다가 제시하는 신형 잠수함의 핵심 능력은 스텔스와 공격력, 지속성과 북극 배치 가능성이다.
적군의 감시망을 피해서 표적을 정밀타격하는 능력, 일정 기간 수중에서 활동할 수 있는 능력, 북극의 차가운 기후와 빙산을 극복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밝힌 셈이다.
동맹국을 지원하기 위해 유사시 해외에 잠수함을 배치할 수 있는 능력과 더불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해군과의 상호운용성 등도 뒷받침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 3000t급 잠수함 제안할 듯
CPSP에는 한국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을 비롯해 글로벌 조선업체들이 뛰어들 전망이다. 캐나다는 잠수함을 자체 설계·건조할 역량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해외 업체와의 협력이 필수다.
CPSP는 전 세계의 잠수함 도입 사업 중에서도 규모가 매우 크다. 서방 세계에서 잠수함 설계·제작 능력을 갖춘 기업이라면 누구나 수주를 노릴 만한 상황이다.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한국은 적극적으로 사업에 뛰어들 태세다. 한국 해군이 운용중인 3000t급 장보고-Ⅲ 잠수함을 제안할 예정이다.
한국 해군이 사용중인 잠수함을 다수 건조한 한화오션은 장보고-Ⅲ 배치(Batch)Ⅱ를 내세워 캐나다 시장을 공략할 방침이다.
장보고-Ⅲ 배치Ⅱ는 한국 해군에 이미 인도된 배치-I 잠수함인 도산안창호함, 안무함, 신채호함보다 중량과 크기가 커졌다. 선체는 약 6m 연장됐고 배수량도 3600t까지 늘어났다.
탐지 및 표적처리 능력이 개선된 전투·음파탐지체계를 탑재하고 최신 소음저감 기술도 적용됐다. 세계에서 2번째로 리튬전지체계를 탑재해 기존에 쓰던 납배터리보다 수중 작전 지속능력을 더욱 키웠다.
장기간 수중에서 활동해야 하는 잠수함의 특성을 반영해 승조원 거주성을 높이고, 자동화 기술을 적극 도입했다.
세계적으로 잠수함 승조원 수가 줄어들면서 자동화 요구가 증가하고 있고, 이를 충족하고자 자동화 기술을 사용하면서 여유 공간이 확보됐다. 이를 승조원 거주에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장보고-Ⅲ의 가장 큰 특징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수직발사체계는 발사관이 6개에서 10개로 늘어났다. 함수의 수평발사체계는 어뢰와 대함미사일 등을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캐나다 해군이 SLBM을 요구할 가능성보다는 미국산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탑재를 원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에서 수직발사체계 개량이 필요할 전망이다.
한국 외에도 서방측 조선소들이 대거 사업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CPSP 참여 가능성이 제기되는 일본 미츠비시·가와사키 중공업의 타이게이급 잠수함(3000t급)은 우수한 성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최신 잠수함 트렌드를 추구하고 있고, 일본 해상자위대와 미츠비시 중공업이 풍부한 잠수함 건조·운용경험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긍정적 요소다.
반면 수출 경험이 없고, 기술 수준에 대해서도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은 단점으로 꼽힌다.
프랑스 DCNS는 호주에 수출하려 했던 잠수함과 유사한 기종을 제안하고 있다. 프랑스 해군 쉬프랑급 핵추진잠수함의 동력원을 공기불요장치(AIP)로 교체한 4500t급 잠수함이다.
프랑스는 독일과 더불어 다수의 잠수함을 수출한 경험을 지니고 있어서 고객 요구에 최적화된 잠수함을 납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핵추진잠수함 설계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크기가 가장 크고 내구성 등도 높을 것으로 보인다.
독일 TKMS는 호주 잠수함 사업에 참여하고자 구상했던 216급을 제안할 것으로 보인다. 수출형으로 계획된 216급 잠수함은 4000t 크기에 순항미사일과 무인체계를 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리튬이온전지와 전기모터로 추진력을 얻는다.
스페인 나반티아가 만든 3000t급 이삭 페랄 잠수함도 경쟁 후보로 거론된다. 공기불요장치(AIP)를 사용하고 순항미사일 등을 운용한다.
스웨덴 사브도 자체 개발한 잠수함을 캐나다 해군 요구에 맞게 수정한 기종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독일, 프랑스, 스웨덴보다 잠수함 건조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기술적 측면에서 두드러지게 차별화할 수 있는 경쟁 우위를 찾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한국 해군에서 3척이 쓰이고 있는 장보고-Ⅲ 배치Ⅰ과 더불어 건조가 진행중인 배치Ⅱ는 기술적으로 검증되어 있다. 그만큼 안정적이라는 의미다. 이같은 부분에 집중하면서 캐나다 방산업계와의 협력을 강화한다면 수주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