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과 울음소리, 급박한 의료진 호출 방송…. 병원이란 공간에서 나는 소리는 모두 불안감을 높이는 소음들이다.
이런 삭막한 공간인 병원에, 매달 아름다운 클래식의 선율을 선사한 사람이 있다. 바로 오재원(64·사진) 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다. 그가 병원에 ‘위로와 힐링의 음악’을 가져온 것은 20여년 전이다.
“2003년 한 소아 환자가 ‘선생님 저 바이올린해요. 선생님도 하신다면서요? 제가 연주해볼 테니 선생님도 해주세요’라며 연주를 제안했어요. 제 진료실에 있는 사진을 보고 알았나 봐요. 아이 연주를 듣고 슈만의 ‘꿈’을 연주해 줬더니, 제 연주를 들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환자를 위한 콘서트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그게 계기가 돼서 ‘환우를 위한 음악산책’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시작은 솔로 연주였지만, 정기적으로 이뤄질 콘서트는 솔로 연주보다는 풍성하고 오케스트라보다는 콤팩트한 구성이 좋겠다 싶어서 고심하다 첼로·피아노 ‘3중주’를 택했다. 사비를 들여 피아노를 사들였고, 무료로 공연에 기꺼이 나서줄 전공자도 찾았다.
처음에는 공연 장소로 병원 강당을 알아봤다가 포기했다. 의자가 딱딱하고 휠체어나 침대차가 드나들기 어려운 등 환자들에게 편하지 않은 환경 때문이었다.
“이럴 바에는 그냥 로비에서 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콘서트 제목처럼 환자들도 산책하는 기분으로 오갈 수 있으니까요. 그랬더니 진짜 침대차를 타고 와서 누운 채로 음악을 듣는 환자들도 있어요. 환자가 ‘음악을 듣고 눈물이 났다’ ‘너무 감동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병원에서 마주치면 ‘다음 연주는 언제냐’ 물어보기도 해요.”
환자들을 위한 음악회이니만큼 선곡도 다양하게 했다. 1시간 정도 진행되는 콘서트에서 가요, 영화 음악, 7080 음악, 가곡 등 다양한 선곡을 했다. 곡 연주 전에 어떤 영화의 어떤 장면에 나온 장면인지도 설명해 준다. 그러면 사람들의 호응이 더 좋다. 특히 반응이 좋았던 곡은 가스펠 곡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환자들에게 ‘당신은 오롯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당신이 아픈 것이 누구한테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다. 아픈 것이 그저 하나님의 뜻이라고, 다 좋아질 것이다. 모두 당신을 사랑해 줄 것’이라고 얘기하고 연주해 주면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위로가 되고, 힘에 되는 거죠.”
그렇게 매년 평균 10회씩, 20년 가까이 이어왔다. 연주 레퍼토리를 매달 바꾸다 보니 그의 연구실 한 면은 가득 채운 책장의 절반은 의학 서적, 나머지 절반이 클래식 CD와 악보로 가득 찼다.
클래식을 좋아하던 소년이 의사의 길로 접어든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였다. 그가 처음 바이올린을 손에 쥔 것은 11살 때다. 당시 전북 군산에 살던 그는 학교 앞에 있던 서점 겸 악기점에서 한 남성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소리를 듣고 매료됐다. 그 길로 집에 있던 돼지저금통 배를 갈랐다. 턱없이 부족한 돈을 손에 쥐고 “바이올린을 사겠다”고 했고, 결국 부모님이 그의 손에 바이올린을 쥐여줬다. 운 좋게 초등학교 선생님 중 음악을 전공하신 분이 있어 그에게 기본을 가르쳐 줬다. 이후 중학교 때 서울로 이사해서 바이올린 전공자에게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공으로 하기에는 배움의 시기가 너무 늦었다. 그래도 바이올린 전공을 고집부리자 그의 아버지는 “네가 전공을 할 만큼은 아니다”라며 바이올린을 부숴버렸다.
그렇게 의대에 입학한 이후에도 바이올린은 그의 동반자였다. 한양대 의대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며 음악의 신(神)이자 의학의 신 ‘키론’을 따서 ‘키론 오케스트라’로 지었고, 미국 연수를 가서도 오케스트라 활동을 했다. 귀국 후 한양대 구리병원에서 근무하며 20년간 ‘음악 산책’을 진행하며 서울 한양대병원에서도 부정기 공연을 했다. 매주 신문에 연재한 음악칼럼을 모아 음악 해설을 집대성한 ‘필하모니아 음악 사계’도 출간했다.
그러나 로비를 타고 흐르던 선율은 4년 전 멈췄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엔데믹 이후 올해 다시 시작될 예정이지만, 예기치 못한 의정갈등으로 환자들의 클래식 산책도 무기한 연기 상태다.
지난 11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또다시 희망을 전하는 음악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제가 내년 초 정년입니다. 얼른 사태가 안정돼 정년 전에 꼭 한 번 아이들에게 다시 연주를 들려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