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역대급 '폭우'… 기록 갈아치웠다

올여름 시간당 100㎜ 벌써 8회
尹 “조속한 피해 복구 지원” 지시

‘역대급 폭우’ 퍼붓는 7월
해수온도 올라 수증기 많아진 탓
“수백년에 한 번 내릴 비 쏟아져”

22일 경기 서해안 최대 80㎜ 비
‘개미’, 한반도 직접 영향 작을 듯
전국 폭염 위기경보 ‘경계’로 상향

이달만 1만2000ha 농작물 피해
적상추 소매가 1주일 사이 56%↑

올해 장마철 비가 일부 지역에 집중적으로 내리는 ‘송곳 폭우’ 현상이 잇달아 나타나면서 전국 곳곳의 7월 일 최대 강수량 기록이 경신됐다. 기후변화로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비를 뿌리는 수증기가 더 많이 생성돼 전례 없는 폭우가 잦아진 데다가 비구름이 띠모양으로 집중 형성된 영향으로 분석된다. 중국 남동부를 향해 북상하는 제3호 태풍 개미의 영향으로 장마전선(정체전선)이 북상하면서 22일 중부지방에 또다시 비가 내릴 전망인데, 장마전선의 영향을 받지 않는 남부지방에선 폭염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행정안전부는 전국적으로 폭염 위기경보 수준을 ‘경계’로 상향 조정했다.

파주시와 연천군 등 경기북부 8개 시·군에 호우특보가 발효된 지난 17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의 한 도로 옆 주차장에 차량이 침수돼 있다.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 제공

21일 기상청에 따르면 이달 들어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한 매서운 장맛비는 전국 곳곳에서 7월 기준 일 최대 강수량 기록을 갈아치웠다. 장마전선이 중부지방에 머물던 17일 경기 파주는 일 강수량이 385.7㎜로 관측을 시작한 2001년 이래 7월 중 가장 많았다. 직전 최고 기록은 2011년 7월27일 관측된 322.5㎜다.

 

중부지방에 앞서 폭우가 집중됐던 남부지방은 일찌감치 기존 일 최대 강수량 기록이 바뀌었다. 8일 경북 안동과 상주의 일 강수량은 각각 211.2㎜와 196.1㎜로 집계돼 역대 7월 중 하루 동안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

지난 18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에서 소방대원들이 침수된 공장에 고립된 근로자를 구조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는 짧은 시간 비를 퍼붓는 ‘극한 호우’가 많았다. 극한 호우란 1시간 누적 강수량 50㎜ 이상, 3시간 누적 강수량 90㎜ 이상인 기준을 동시에 충족하거나 1시간 누적 강수량이 72㎜ 이상인 경우를 뜻한다. 시간당 100㎜의 비는 폭포수에 비유될 만큼 많은 비를 의미한다. 올여름 시간당 100㎜ 강수는 이날까지 벌써 8차례 발생했다. 지난해 시간당 100㎜ 폭우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올해 이례적으로 강한 비가 연달아 쏟아진 것이다. 9일엔 자동기상관측장비(AWS) 기록상 전북 군산 어청도 일대에서 자정 무렵부터 1시간 동안 146.0㎜ 비가 내렸는데 관측 사상 최고 기록이었다.

 

기상청 관계자는 “시간당 100㎜의 호우는 정말 흔하지 않은 현상으로 수십년에서 수백년에 한 번 내려야 할 비가 쏟아진 것”이라며 “물폭탄의 재료가 되는 수증기를 직접적으로 만드는 해수면 온도 상승이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해안에 강하고 많은 비가 내린 16일 오전 전남 완도군 완도읍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침수돼 차량 일부가 흙탕물에 잠겨 있다.   전남 완도소방서 제공.
지난 18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문산역 인근에서 차량이 침수돼 경찰이 운전자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극한 호우로 인한 농작물 피해도 이어졌다. 17일부터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내린 집중호우로 농작물 1300여㏊가 침수 피해를 보았다. 앞서 7∼10일 침수 지역을 포함하면 피해 규모는 이달에만 1만2000㏊에 달한다.

 

이날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17일부터 시작된 2차 호우로 경기와 충남 등의 농작물 1354㏊가 침수되고 농경지 10㏊가 유실·매몰됐다. 작목별로는 벼 피해가 가장 컸으며, 지역은 충남도가 전체 침수 피해의 70%를 차지했다.

 

농작물 피해가 커지며 상추 등 채소와 제철 과일의 가격도 다시 들썩이고 있다. 농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등은 19일 기준 적상추 소매가격이 100g에 2107원으로 1주일 만에 56.3% 올랐다고 밝혔다.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 호우경보가 발효된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중동교 아래 불광천 산책로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연합뉴스

일부 농가에서 침수 피해를 본 과채류 가격도 1주일새 상승세를 보였다. 수박은 1개 2만1736원으로 1주일 전보다 3.5% 올랐다. 이는 평년보다 7.5% 오른 수준이다.

 

극한 호우는 당분간 멈추겠지만 이날부터 북상한 태풍 ‘개미’의 영향으로 22일부터 중부 지방을 중심으로 장맛비가 다시 시작될 예정이다.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 호우경보가 발효된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중동교 아래 불광천 산책로가 물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기상청은 이날 오전 9시 기준 필리핀 마닐라 동북동쪽 약 520㎞ 해상에서 올라오고 있는 태풍이 한반도 남단에 위치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강도를 강화하고 북쪽으로 확장시킬 것으로 예상했다. 22일 새벽부터 북태평양 고기압이 중부 지역까지 확장하고, 북한 쪽에 대기 상층으로 기압골이 지나면서 비구름대가 다시 활성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22일 경기 서해안에 최대 80㎜, 23일엔 경기 북부에 최대 80㎜의 비가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현재 예상 경로대로라면 태풍 개미는 대만 동쪽 바다를 거쳐 중국 상하이 쪽에 상륙할 것으로 보여 한반도에 직접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낮다.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권에 든 남부 지방은 폭우 대신 폭염이 예상된다. 강원 동해안과 강원 남부산지, 충청권 내륙, 남부지방, 제주도에서 당분간 최고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제주 동부 35도 이상)으로 올라 매우 덥겠다. 이날 행정안전부는 전국적으로 폭염특보 발효가 확대됨에 따라 폭염 위기경보 수준을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 조정했다. 경계 단계는 전국 특보 구역의 40% 이상에서 일 최고 체감온도 33도 이상이 3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발령된다.

경복궁역 근처 포트홀 발생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사직터널 방향으로 가는 사직로에 포트홀(도로 파임)이 발생해 복구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포트홀이 가로 40㎝·세로 20㎝, 깊이 70㎝ 크기로 생기면서 2개 차로가 4시간가량 통제되는 등 교통 혼잡이 발생했다. 연합뉴스

한편 지난주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가 컸던 지역들은 복구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충남 당진시 당진전통시장은 상인과 자원봉사자의 복구작업이 한창이다. 18일 당진에는 170㎜가 넘는 폭우가 내렸고, 당진천이 범람하면서 당진전통시장 일대에 무릎까지 빗물이 찼었다.

 

이날 당진전통시장에서는 상인과 자원봉사자들이 빗물에 젖은 집기류 등을 바깥으로 옮기고 정리하는 데 진땀을 빼고 있었다. 한 상인은 “전기제품인 데다 엔진이 있어 기계·부품을 모두 꺼내서 말려야 한다”며 “매장 전체에 있는 자재들을 다 꺼내야 하는데, 30년 넘게 영업을 해오다 보니 안에 부품이 말도 못 하게 많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관계 부처에 “집중호우 지역의 조속한 피해 복구를 지원하고 농산물 수급 상황을 점검하라”고 긴급 지시했다고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전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범정부적 복구지원본부를 가동해 피해시설 응급복구를 위한 특별교부세 지급, 응급복구반 운영 등을 조속히 추진하기로 했다. 또 지난 15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한 5개 지자체 외에 추가로 특별재난지역을 지정하기로 하고 현재 진행 중인 피해조사 결과에 따라 신속히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