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100만명에 가까운 시민이 운집한 서울 도심에서 ‘아침이슬’이 울려 퍼졌다. 군중 모두가 아는 노래는 ‘애국가’ 외에 이 곡이 유일하다고 할 만큼 대중적인 민중가요였다. 1970∼80년대 군부독재 시절 대표적 저항 가요이자 듣거나 부를 때마다 가슴 찡하게 하는 ‘아침이슬’을 지은 김민기가 21일 무거운 짐 모두 버리고 하늘로 갔다. 향년 73세.
지난해 위암 4기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으며 경기 고양시 일산 집에서 요양 중 병세가 급격히 나빠졌다고 한다. 김민기가 1991년 세운 후 서울 대학로 소극장 문화의 상징이었던 ‘학전’의 김성민 총무팀장은 22일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일 오전 병원 응급실로 옮겨 다음 날 오후 8시26분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고인 조카로 2009년부터 학전 살림을 맡아온 김 팀장은 “별다른 유언은 없었지만 몇 달 전부터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고, 학전과 관련해선 ‘지금 끝내는 게 맞다. 나는 할 만큼 다했다’고 하셨다”며 “(추모 행사·공연 등) 김민기 이름을 앞세운 어떤 것도 하지 말라는 당부도 했다”고 전했다.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상록수’ 중)
민중의 고단한 현실이나 사회 부조리와 모순을 고발하는 내용이 담긴 이 음반은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대중음악사의 기념비적 음반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불온하다는 이유로 음반이 압수당하고 이후 ‘아침이슬’, ‘상록수’, ‘늙은 군인의 노래’ 등 김민기의 곡들은 줄줄이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정치적 탄압으로 가수 생활을 못 하자 농사와 봉제 공장, 탄광 일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극예술에도 관심과 애정이 많았다. 1973년 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와 이듬해 창작마당극 ‘아구’ 제작에 참여했다. 1978년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시작으로 1983년 연극 ‘멈춰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 등을 연출했다.
1991년 3월15일, 학전을 설립해 라이브 콘서트와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올렸다. ‘배울 학(學), 밭 전(田)’이란 뜻처럼 문화예술계 인재를 키우는 못자리 역할에 충실했다. 학전이 낳은 최고 스타인 고 김광석을 비롯해 동물원, 들국화, 강산에, 박학기, 장필순, 유리상자 등 실력파 가수들이 학전 무대에 섰다. ‘학전 독수리 오형제’로 불린 김윤석, 설경구, 장현성, 황정민, 조승우를 비롯해 방은진, 이정은, 김무열, 최덕문, 안내상 등 많은 배우에게도 성장 발판이 됐다. 특히 김민기가 독일 원작을 한국 정서에 맞게 번안해 1994년 초연한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배우 등용문이었다. 지난해까지 4500회가량 공연하며 관객 70여만명을 모은 소극장 뮤지컬의 전설이다. 김민기와 학전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작품에도 공들여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 떡볶이’ 등을 선보였다.
하지만 만성적인 재정난에다 김민기의 건강 문제가 겹쳐 학전은 33년 만인 지난 3월 폐관했다. 학전 건물은 고인의 뜻을 존중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어린이·청소년 중심 공연장 ‘아르코꿈밭극장’으로 새단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학림다방에서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열정이 마음에 울림을 줬다”며 “역사는 선생님을 예술과 세상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지닌 영원한 청년으로 기억할 것이다. 편히 영면하시기를 기원한다”고 애도한 뒤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