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 받고 문제 판 교사… 베일벗은 ‘사교육 카르텔’

국수본 1차 수사 결과 69명 입건
모평 검토진 활동하며 문항 제작
4년간 입시업체에 팔아 2억 수수
개당 10만원… 최대 30만원 받아

경찰,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적용
서울 소재高 재직 교사 24명 송치
교사 대부분 “처벌사안 아냐” 부인

현직 교사들이 사교육 업체와 유착해 모의고사 문제를 빼돌린다는 ‘사교육 카르텔’ 의혹의 실체가 경찰의 조사로 드러났다. 한 현직 고교 교사는 4년여간 대형 입시업체에 문항 수천개를 넘기고 약 2억5000만원을 받는가 하면,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 모의고사 검토진으로 참여해 알게 된 정보로 문항을 만들어 업체에 판매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모습. 연합뉴스

22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사교육 카르텔 사건의 1차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69명을 입건하고, 이 중 현직 교사 24명을 검찰에 넘겼다고 밝혔다. 5명은 불송치했다.

입건 대상자는 범행 당시 현직이었던 퇴직 교사 2명을 포함한 교원이 46명, 강사 6명 등 학원 관계자가 17명, 기타 6명이다. 기타 6명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관계자 4명과 입학사정관 1명이 포함됐다.



1차로 송치된 24명의 경우 모두 서울 소재 고교에 재직 중인 현직 교사인 것으로 파악됐다. A씨 등 14명은 대형 입시학원에 수능 사설 문항을 제작·제공한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청탁금지법 위반)를 받고 있다. 문항 가격은 개당 평균 10만원 전후에서 난이도에 따라 20만~30만원까지 올라가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3명은 특정 학원에 독점적으로 문항을 제공하기로 약속하고 별도로 최대 3000만원의 계약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수수 금품이 가장 많은 A씨의 경우 2019년 4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수능 사설 문항 수천개를 제공하고 2억5400만원을 수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A씨는 평가원이 주관하는 23학년도 6월 수능 모의평가 검토진으로 참여해 알게 된 출제정보를 이용해 제작한 11개 문항을 특정 사교육업체 두 곳에 판매한 혐의(위계공무집행방해, 정부출연기관법위반 혐의)도 받고 있다.

서울 목동 학원가의 모습. 뉴스1

경찰은 현직 교사가 사교육 업체에 문항을 판매한 행위에 대해 최초로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국수본 관계자는 “현직 교사들의 문항 판매 행위를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형사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며 “공교육 교사와 사교육 업체 간 문항 판매 관행을 근절하고 사회적 경종을 울리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19명에 대해선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했다. 최근 3년 내 수능 관련 상업용 수험서를 집필한 것이 수능·모의평가 출제위원 결격 사유에 해당함에도, 이를 숨기고 허위 심사 자료를 제출해 출제위원으로 선정됐다는 것이다. 청탁금지법 위반과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가 중복 적용된 피의자는 총 10명이다.

이들 교사는 대부분 경제적인 이유로 개인별로 범행에 참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직까지 조직적으로 범행이 이뤄진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게 경찰 측 설명이다. 이들은 경찰에 “잘못은 있지만 형사처벌 사안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A씨의 경우 “사교육 업체에 판매한 문제와 모의평가 문제 사이에 유사성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경찰은 전문가 감정 등을 토대로 유사성을 확인했다는 입장이다.

이번 1차 송치 대상자에는 논란이 됐던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지문’ 의혹 관련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해당 의혹은 한 사설 모의고사에 등장한 지문이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문제로 똑같이 출제되면서 촉발됐다. 경찰은 나머지 입건 대상자 40명에 대해서도 최대한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