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0만원' 돈다발 범상치 않다… 분실물 사건 맡은 '형사3팀' 그날의 이야기

CCTV 100대·블박 6대 뒤지고 압수수색까지…경찰이 전한 '7500만원' 돈다발 주인의 정체

“7500만원 돈다발의 주인을 찾으려고 형사 3개팀이 폐쇄회로(CC)TV 100대, 블랙박스 6대, 압수수색까지 이 잡듯 뒤졌습니다.”

 

23일 기자와 만난 박종구 울산남부경찰서 형사3팀장은 “감식반까지 투입될 정도로, 정말 살인사건 수사할 때 쓰는 수사기법을 총동원해 돈다발 주인을 찾았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오만원권 돈다발을 아파트 화단에 그것도 두 번이나 던져둔 게 누군지 미스테리 했다”며 “통상 보이스피싱이나 마약, 도박 등 범죄와 관련 있는 돈이었다면 화단 같은 곳에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에 더 의아했고, 본청에서도 궁금해하더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박 팀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난 5일부터 열흘간 이어진 돈다발 주인 찾기 과정을 재구성했다. 

 

지난 5일 오전 10시 울산 남부경찰서에 신고전화가 걸려왔다. 하루 전날 남구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경비원이 오만원권을 100장씩 묶은 5000만원 돈다발을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하루 뒤 오전 7시45분 이 아파트 환경미화원이 2500만원 돈다발을 또 발견했다고 신고했다. 예사롭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단순 분실물 사건을 주로 맡는 생활질서계가 아닌 강력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3팀이 배정됐다. 

 

경찰은 먼저 주변 CCTV부터 살폈다. 화단을 확인할 수 있는 CCTV는 2대가 있었는데, 하필 돈이 있던 화단을 제대로 비추는 것이 없었다. 아파트 주변 CCTV와 화단 앞에 주차돼 있던 차량 블랙박스를 뒤지기 시작했다. 박 팀장은 “팀원들이 8배속, 16배속으로 돌려 밤새워 모니터만 들여다봤다”고 말했다.

 

돈에 묶여진 ‘띠지’를 단서로 삼아 돈다발의 출처를 찾아가는 것으로 수사방향이 정했다. 띠지엔 은행명과 인출날짜가 적혀있다.  문제는 또 있었다. 당장 은행을 통해 확인하려면 압수수색 영장이 필요했다. 돈주인을 찾는데 법원의 영장을 발급받아야 할 판이었다. “7500만원 돈다발이 나왔는데, 전후 상황이 너무 이상하다”면서 검사와 판사를 설득했다.

 

결국 압수수색으로 해당 은행의 고액인출자 명단을 받았다. 고액인출자 중에서 돈다발 주인을 확인하는 과정도 녹록치 않았다. 돈 주인을 찾기 위해서라는 사정 설명에도 “내 돈을 내가 찾았는데 왜 경찰에게 그걸 설명해야 하냐”는 식의 퉁명스런 대꾸가 돌아오기 일쑤였다. 고액인출자들의 통장내역을 확인하고, 어디에 사용했는지 등을 일일이 확인했다. 

 

돈 주인 80대 A씨를 찾아냈다. 하지만 휴대폰이 없어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집을 찾아가도 하루종일 외출해 만나기도 어려웠다. 잠복 근무와 함께 이웃들의 도움을 받았고, 9일 오후 11시쯤 A씨를 만날 수 있었다. 박 팀장은 “A씨는 돈을 잃어버린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화단’이라는 단어가 나왔고, 돈 주인이 맞다고 짐작했다”고 말했다.

 

A씨를 유력한 돈 주인으로 판단했지만, 확실한 증거가 더 필요했다. 경찰은 그가 돈을 인출하는 은행 CCTV 화면과 A씨의 이동 동선에 맞춰 방범용 CCTV 등을 다시 확인하기 시작했다. 띠지의 지문감식 등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했다. A씨가 인출한 돈과 갖고 있는 돈의 차이 등도 고려했다. A씨가 인출할 당시 돈다발의 묶인 모습, 돈이 접힌 모양 등이 일치했다. A씨가 인출할 때 입은 옷차림 그대로 아파트 로 향해 배회하는 모습 등도 확인했다. 위조지폐를 확인하는 수준의 감식까지 벌인 것이다. 박 팀장은 “아파트 CCTV 기록은 A씨가 아파트에 돈을 두고 간 지난달 13일부터 남아있었다. 돈이 발견되는 것이 하루만 늦었어도 A씨가 아파트 주변을 배회하는 장면조차 확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돈을 돌려주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A씨는 연락없이 자꾸 외출해 사라졌고, 비에 젖어 잘 떨어지지 않는 돈은 하나하나 떼내 계수기에 넣어야 했다. A씨의 돈은 다시 A씨 계좌에 입금해주는 방식으로 돌려줬다. A씨는 2021년 자신이 살던 주택이 재개발되면서 개발보상금으로 3억원을 받게 됐다. 이전엔 폐지를 주워 생활비를 벌었지만, 보상금을 받은 뒤엔 일을 그만뒀다. 돈다발 주인을 찾은 일이 알려지면서 A씨에게 30년 전 이혼하면서 연락이 끊긴 자녀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박 팀장은 “앞으로 A씨가 1000만원 이상의 돈을 인출할 때엔 자녀들과 의논하기로 했다”며 “까다로운 수사였지만 결국 돈다발 전모를 다 파악할 수 다행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