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정석이 뮤지컬 ‘헤드윅’에 이어 영화에서도 여장남성을 연기한다. 31일 개봉하는 ‘파일럿’에서 여성으로 꾸미고 항공사에 위장 취업한다.
영화 속 그를 보면 ‘여장 연기’의 달인 같다. ‘헤드윅’에서 조정석은 여성으로의 성전환에 실패한 록커였다. 긴 머리에 짧은 치마를 입고 양성의 경계에 선 그는 위태로우면서 카리스마 있고 아름다웠다. 영화 ‘파일럿’의 조정석은 성별만 유사할 뿐 딴판이다. 장르로 치면 코미디다. 여장한 모습이 그럴싸해 절로 웃음이 나고, 아무리 조심해도 남성으로서 본성이 불현듯 나와 벌어지는 소동을 보면 또 웃게 된다.
18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조정석은 ‘파일럿’의 대본을 보자마자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본을 너무 재밌게 읽었다”며 “시나리오를 볼 때 캐릭터가 너무 신선하게 느껴지면서 자연스럽게 나를 캐릭터에 대입하게 될 때가 있는데 이 작품이 그랬다”고 밝혔다.
이 작품은 코미디의 틀 안에 한 남성의 성장담을 담았다. 일하는 여성이 겪는 성차별과 불쾌한 경험, 직장인의 애환과 꿈을 그린다. 일터에서 외모 평가가 왜 부적절한지도 야무지게 꼬집는다. 조정석은 “이 영화는 코미디이지만 따뜻함과 드라마가 잘 녹아 있다”며 “그래서 제가 선택한 것 같다”고 했다.
조정석은 코미디 연기가 기대되는 배우다. 그간 ‘건축학개론’ ‘관상’ ‘엑시트’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왔다. 그는 “전 코미디 연기에서 무언가 시도할 때 주저하거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이게 웃길까, 재밌을까’ 이러진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코미디는 무엇보다 앙상블이 중요하다.
“제가 재밌는 이야기를 했는데 상대가 웃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뻘쭘하죠. 동료 배우의 리액션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야 코미디가 엄청난 힘을 발휘함을 이번에 다시금 확인했어요. 제 코미디 연기의 모든 공은 동료 배우들에게 돌리고 싶어요.”
영화에서 한정우는 고달플 만큼 열심히 살지만 매번 기대와 달리 벽에 부딪힌다. 장애물을 만나 시행착오를 겪으며 한뼘 더 성장하는 모습이 영화 후반부에 그려진다. 배우로서 조정석도 한정우 못지않게 치열하게 달려왔다. 그는 “20대로 돌아가면 그때만큼 열심히 할 수 있을까”라며 “인간 조정석으로서는 아쉬운 선택을 해서 ‘그때 왜 그랬지’ 하는 순간이 너무나 많지만 일에서는 매 순간 후회가 없다”고 했다.
4년 전 딸이 태어나며 아빠가 된 그는 요즘 연기하며 많은 변화를 느낀다. ‘파일럿’에서도 아역 배우가 ‘나 아빠 좋은데’ 하며 끌어안자 과하게 눈물이 글썽글썽해졌다. 40대인 그는 먼 훗날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그렸다. “화면에 뒷모습이 나오는데 백발이에요. 카메라가 서서히 뒤로 빠지면 옆에 손잡고 서 있는 백발의 여자분이 나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