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총선이 끝난 지 2주가 넘었지만 새 내각을 구성하지 못하고 정치권이 공전하고 있다. 연합 정당 간 내홍으로 총리 추천 후보를 결정하지 못했던 총선 1위 좌파정당연합 신민중전선(NFP)이 가까스로 새 총리 후보를 추천했지만 이번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지명을 거부하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23일(현지시간) 프랑스 르몽드 등에 따르면 NFP는 이날 성명을 통해 “각 정당 지도자가 모여 논의한 끝에 공화국 대통령에게 총리 임명 제안을 할 수 있게 됐다”며 루시 카스테트 파리시 재무국장을 후보로 소개했다. NFP는 카스테트에 대해 “64세 정년 연장에 반대하는 투쟁에 적극 참여했고, 세금 사기와 금융 범죄를 단속하기 위해 노력해 온 고위 공무원”이라고 설명했다.
NFP는 총선 1차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극우 국민연합(RN)을 견제하자는 국민적 목소리 속에 결선투표에서 극적으로 1당을 차지했지만 이후 연합 내 최대 정당인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가 사회당과 이견으로 총리 후보 지명 관련 논의를 중단하는 등 내홍을 거듭하며 총리 후보를 확정하지 못했다. 진통 끝에 총리 후보 추천을 마친 NFP의 각 정당 대표들은 카스테트에 대한 빠른 총리 지명을 공개 요구하며 총리 임명권을 가진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본격적인 압박에 나섰다. LFI의 에리크 코크렐 의원은 엑스(X·옛 트위터)에서 “이제 마크롱 대통령은 더 이상 (총리 임명을 미룰) 구실이 없다”고 밝혔다.
총선에서 패배한 마크롱 대통령으로서는 남은 임기 3년의 국정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분석이다. NFP는 마크롱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연금 개혁 폐지 관련 법안을 이날 하원에 발의하는 등 현 정부의 국정 운영과는 결이 다른 정책 방향을 드러내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 총리가 들어서며 동거정부가 본격화될 경우 친기업적 정책을 펴오며 외국 투자 등을 끌어낸 마크롱 대통령의 경제 정책도 차질을 빚게 된다.
마크롱 대통령의 속내가 드러나는 이날 인터뷰가 나온 뒤 NFP 구성정당들은 크게 반발했다. 극좌 성향 LFI의 장뤼크 멜랑숑 대표는 엑스에 “대통령은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새로운 공화 전선을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다. 이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비난했으며 같은 당 마누엘 봉파르 의원도 “민주주의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부정”이라고 비판에 동참했다. 사회당의 올리비에 포르 대표도 마크롱 대통령이 “선거 결과를 존중하지 않고 최악의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