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맹탕 안전점검·매뉴얼… 지하철 감전死 불렀다

삼각지역 노동자 사고 보름 전
서울교통공사·시공사 안전회의
‘조명 충분·전기설비 양호’ 언급
실제 작업장 상황 달라… 날림 정황
분전반 전원차단 원칙도 안지켜
잇단 참변 속 작업환경 개선 시급

이달 17일 서울 지하철 6호선 삼각지역에서 조명 설치 작업을 하던 용역업체 A사 소속 노동자 박모(56)씨가 감전돼 사망하는 등 지하철 전기 관련 작업 중 사망 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이달 초 도급사인 서울교통공사(이하 공사)와 시공사인 A사가 참여한 안전·보건 회의가 날림으로 진행된 정황이 포착됐다.

17일 50대 작업자 감전 사고가 발생한 서울지하철 4·6호선 삼각지역 12번 출구 밖 환기구 내부의 모습. 서울 용산소방서 제공

24일 공사가 더불어민주당 임규호 시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박씨는 17일 현장에 투입된 지 약 44분 만인 오전 8시50분쯤 사고를 당했다. 당시 현장에는 전기감리원·현장대리인 각 1명과 박씨를 비롯한 작업자 5명 등 총 7명이 있었다. 박씨는 심정지 상태로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며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오전 10시50분 숨졌다.

 

A사는 지하철 내 대기질 개선을 위해 양방향 전기집진기(먼지 등을 빨아들여 대기질을 개선하는 장치) 전력공사를 수주해 올해 4월 착공, 10월 준공을 목표로 작업을 벌여왔다. 박씨는 해당 공사 현장이 어두워 조명을 증설하던 중 변을 당한 것으로 파악된다. A사 관계자는 이날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작업 현장의 기존 전등이 어두워 추가로 깔아야 했는데, 조도가 불량하지 않았다면 굳이 조명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달 2일 공사와 A사, 감리사인 B사 등이 산업안전보건법 64조에 따라 진행한 안전·보건협의체 회의록과 합동 안전보건 점검표를 보면 ‘작업장의 조명은 충분’하며, ‘전기설비의 절연·접지상태가 양호하다’고 되어 있다. 사고 발생 2주 전 가진 회의에서 언급한 작업장의 상황이 실제와는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안전 점검 회의가 형식적이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분전반(두꺼비집)의 전원을 차단하지 않은 채 작업이 이뤄진 점도 문제다. 공사에 따르면 박씨는 2.42m 높이 전선관 케이블 결선 작업을 하다 전기가 흐르는 ‘활선’과 접촉돼 감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기집진기 전기공사 관련 공사의 시방서(공사를 시행하는 일반적인 기준을 기록한 서류)에 따르면 전기공사 때 활선 작업은 원칙적으로 금지되며 단전을 확인한 후 작업을 시작해야 하지만, 현장에서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사고가 터진 후 공사는 “조도가 불량한 현장에선 충전용 조명등을 사용하는 한편, 작업자들에게 활선 경보기를 지급하고 안전보호구를 건조 후 사용하도록 하는 등 유사 사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당장 눈에만 보이는 조치를 하는 데 그치지 말고 공사 문화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공사 시간의 촉박함이든, 비용·인력의 문제든 용역업체가 시방서를 따르지 않고 단전을 하지 못했던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며 “이러한 원인을 조사해 안전한 작업 환경이 조성되도록 개선하는 게 공사의 역할”이라고 꼬집었다.

 

앞서 이달 7일 지하철 3호선 연신내역에서는 전기실 배전반 케이블 표시 스티커를 부착하던 공사 직원이 감전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박씨가 사망한 17일 양재역에서는 신분당선 운영사의 협력업체가 고용한 60대 일용직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해 현재 경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