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방청객 ‘맞춤형’ 필리버스터… 이학영·박충권 ‘티키타카’

필리버스터 설명해준 이 부의장에
방청석에서 박수도 터져 나와

박 의원 “이런 것도 다 국회의 모습
깊이 고민해 보는 시간 되었으면”

이른바 ‘방송4법’을 둘러싸고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진행된 국회 본회의장에서 모처럼 여야가 호흡을 맞추는 상황이 발생했다. 의사봉을 쥐고 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학영 국회부의장과 필리버스터 주자인 국민의힘 박충권 의원이 방청석에서 본회의 장면을 지켜보던 어린 방청객들을 위해 ‘맞춤형’ 발언에 나선 것이다.

 

상황은 26일 박 의원이 반대 토론을 하던 중 시작됐다. 박 의원은 발언을 시작한 지 3시간15분쯤 지나 이 부의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학영 국회부의장(왼쪽), 국민의힘 박충권 의원. 연합뉴스

그러자 이 부의장이 일어나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방청석에 소년 소녀들이 와 계시는데, 미래 세대가 국회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지금은 회의 중이 아니고 필리버스터라는 일인 토론 시간이다. 국회의원이 다 어디 갔느냐고 의아해 하실 텐데, 24시간 내내 하기 때문에 교대로 돌아가면서 하신다는 것을 이해해 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이 부의장이 “이해하실 수 있으시죠”라고 묻자 방청석에서 “네” 하는 대답이 나왔다.

 

본회의장에 적막이 흐르자 이 부의장이 다시 발언을 이어갔다. 이 부의장은 “어린 친구들 오셨는데, 필리버스터 처음 듣는 말이죠”라고 물은 뒤 “어떤 법안을 통과시키기 전에 그걸 반대하는 정당에서 무제한 토론을 요구한다. 지금은 방송법을 개정하기 위해 법이 올라와 있는데, 민주당에서 올렸고 국민의힘에서 통과에 반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회의 한 제도가 현재 진행되고 있으니까 어려운 필리버스터라는 말 하나를 공부하고 가시면 그나마 오신 보람이 있지 않을까 싶다”며 “잘 방청하시고 돌아가시기 바란다.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이에 어린이 방청객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고 이 부의장은 “원래 방청석에서 박수도 못 치게 돼 있는데 이럴 때는 괜찮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26일 국회 본회의 무제한 토론을 생중계하던 국회방송에 잡힌 방청객들의 모습. 국회방송 화면 캡처

용무를 마치고 발언대로 돌아온 박 의원도 “여러분을 이 자리에서 뵙게 돼 너무 반갑다”고 방청객들에게 인사했다. 그는 “좋은 일로 여러분의 미래와 우리나라의 미래, 또 우리나라가 더 발전하고 좋아지는 방향으로의 어떤 법안 상정을 통해 여러분들을 뵈었다면 너무 좋았을 것 같은데, 이렇게 국회에서 극한 상황으로 대립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드려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그러면서도 “이런 모습들도 다 국회의 모습이기 때문에 여러분께서 잘 봐주시고 또 국회의원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지 깊이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박 의원은 이어 자신이 북한에서 태어난 탈북 공학도 출신 비례대표 의원이라고 소개한 뒤 무제한 토론을 이어갔다.

 

앞서 민주당이 방송4법 강행 처리에 나서자 국민의힘이 무제한 토론을 요청해 최소 4박5일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필리버스터가 시작됐다. 4개 법안 가운데 방송통신위원회 의결정족수를 4인 이상으로 규정하는 방통위법 개정안이 가장 먼저 상정됐다.

 

야당이 즉각 토론 종료를 신청해 법안 1건당 24시간씩 토론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필리버스터는 시작 24시간이 지나면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180명) 찬성으로 강제 종료할 수 있다. 범야권 의석이 192석이어서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24시간 만에 토론을 종료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