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일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동의한 것은 일본이 한국인 노동자 관련 시설 운영과 매년 추도식을 열겠다고 한 약속 등 ‘선조치’에 따른 것이다. 사도광산을 둘러싼 한·일 관계 악화 등의 고비는 일단 넘겼지만, 일본이 앞으로 조치 사항을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 관건이다. 여전히 ‘강제노역’(forced work) 표현은 명시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시설 운영이 필요한 이유다.
28일 외교부에 따르면 이번 동의 결정은 정부가 일본의 말만 믿었다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2015년 군함도 등재 당시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일본의 선조치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관철함에 따라 가능했다. 9년 전 일본은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하시마(군함도) 탄광을 등재할 때 조선인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정보센터를 설치하겠다고 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는 ‘약속’으로는 충분치 않고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원칙을 세웠다. 일본 정부에 요구한 것은 ‘어음’이 아닌 ‘현찰’이었다고 한 외교 소식통이 전했다. 또 정부는 세계유산위원회 19개 위원국과 접촉하며 한국인 노동자들의 가혹한 현실을 포함한 ‘전체 역사’가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리고 “당시 서구의 기계화에 견줄 수 있는 일본 독자 기술의 정수였던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가) 14년 넘게 걸렸다”며 기쁨을 표현했다.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도 환영 담화문을 냈다. 하지만 이들은 사도광산과 관련된 조선인 강제노역 역사는 언급하지 않았다.
아사히신문은 “강제 노동 해석을 둘러싼 대립을 피하면서 양국 정부가 서로 자국 여론도 배려하는 형태로 합의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한·일 간 합의를 통해 컨센서스(전원동의) 방식으로 사도광산이 등재될 수 있던 점을 높게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