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슬럼프 딛고 펜싱 종주국서 우뚝… “단체전도 금 딸 것” [파리 2024]

‘펜싱’ 오상욱 ‘그랜드 슬램’ 달성

세계 1위 자격으로 출전 도쿄 올림픽
금메달 기대 컸지만 8강서 고배 마셔
“‘널 이길 사람 없다’ 코치 격려 큰 힘”
31일 사브르 단체전 3연패 기대감 커

한국 펜싱 남자 사브르 간판 오상욱(28·대전광역시청)은 중학교 1학년 때 친형을 따라 펜싱을 시작했다. 중2 때부터 한 학년 위 형들을 척척 제압하는 등 소질을 보이자 중3 때부터 엘리트 선수의 길을 선택했다. 중1 때만 해도 160㎝ 초반이었던 키도 중3 졸업 즈음엔 187㎝까지 컸고, 고교 때 190㎝를 넘어섰다. 펜싱 시작 당시엔 키가 크지 않은 편이라 기술적인 플레이를 주로 하던 오상욱은 신장이 커지자 긴 리치를 이용한 플레이에도 능해졌다. 신체적 장점과 기술까지 겸비한 오상욱은 18세이던 2014년 12월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한국 사브르 역사상 최초의 고교생 국가대표의 탄생이었다.

태극마크를 단 이후 오상욱의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졌다. 2019년엔 두 차례 그랑프리 우승과 세계선수권 개인전 금메달까지 휩쓸며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3년 전 열린 2020 도쿄 올림픽에 오상욱은 세계랭킹 1위 자격으로 개인전에 참가했다.

완벽한 다리 찢기 공격 오상욱(왼쪽)이 2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튀니지 파레스 페르자니와의 결승에서 다리를 찢으며 공격을 펼치고 있다. 파리=연합뉴스

생애 첫 올림픽의 중압감이 컸을까. 결과는 8강 탈락이었다. 그러나 김정환, 구본길, 김준호와 함께 단체전에서는 랭킹 1위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픔과 환희가 공존한 2020 도쿄 이후 오상욱의 선수 인생엔 굴곡이 심했다. 2022년 12월엔 연습 경기 도중 실수로 상대 선수의 발을 밟아 오른 발목이 꺾여 인대가 파열됐다. 펜싱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큰 부상이었다. 수술 후 피나는 재활 과정을 견뎌낸 오상욱은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을 석권하며 부활을 알렸다.

시련은 또다시 찾아왔다. 올해 초 튀니스 그랑프리에서 상대와 부딪쳐 칼을 잡는 오른 손목 인대를 다쳐 한동안 깁스 신세를 면치 못했다. 오상욱은 실망하지 않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 결과 지난 6월 아시아선수권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모두 휩쓸며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다. 2012 런던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리스트 출신의 원우영 코치의 주도 아래 우직하게 실시한 고된 체력 훈련과 기술 훈련을 버텨냈다.

2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경기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오상욱이 태극기를 들고 있다.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세계랭킹은 4위로 도쿄 때보다 더 낮게 파리에 입성했지만, 두 차례 큰 부상과 그에 따른 슬럼프를 딛고 일어난 오상욱은 더 강했다.

오상욱은 27일(이하 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파레스 페르자니(튀니지)를 15-11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3년 전 도쿄에서의 아픔을 한 방에 떨쳐버리는 ‘해피 엔딩’이었다.

이미 세계선수권대회(2019 부다페스트)와 아시아선수권대회(2019 도쿄, 2024 쿠웨이트), 아시안게임(2023 항저우) 개인전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낸 바 있던 오상욱은 이번 파리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을 통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해냈다.

감격의 금메달로 한국 펜싱의 새 역사를 써낸 뒤 믹스트존에 등장한 오상욱은 “엄청 기쁘지만 쉬고 싶은 마음이 크다. 단체전까지 금메달 따고 편히 쉬겠다”고 말했다.

오상욱이 꼽은 고비는 파레스 아르파(캐나다)와 8강전이었다. 아르파는 세계랭킹 5위이자 올림픽 개인전 3연패를 이룬 강호 아론 실라지(헝가리)를 제압하고 올라온 다크호스였다. 피말리는 접전 끝에 아르파를 15-13으로 꺾은 오상욱은 “그 선수가 올라올 거라고 정말로 생각하지 못했다”며 “경기 도중 흔들리기도 했는데, 원 코치님께서 ‘네가 할 것만 하면 널 이길 사람은 없다’고 격려해주신 게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결승전도 고비가 있었다. 경기 초반부터 오상욱은 14-5로 크게 앞서며 낙승을 거두는 듯했으나 페르자니의 맹추격에 14-11까지 쫓겼다. 어렵게 금메달 포인트를 따냈던 오상욱은 당시를 돌아보며 “정말 온몸에 땀이 엄청나게 났다. ‘여기서 잡히겠어’라는 안 좋은 생각이 많이 났지만, 선생님께서 할 수 있다고 계속 말씀해주셨다”고 말했다.

오상욱이 2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펜싱 남자 사르브 개인 결승전에 출전해 시상식에서 이기흥 체육회장에게 금메달을 받고 있다.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그토록 바랐던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리스트가 됐지만, 단체전 금메달보단 기쁘지 않다며 솔직한 심정도 털어놨다. 오상욱은 “단체전은 함께 뭔가를 이겨내고, 못한 부분을 다른 사람이 메워주는 그런 맛이 있는데 개인전은 홀로서기”라고 평가했다. 오상욱은 31일 구본길(국민체육진흥공단), 박상원(대전광역시청), 도경동(국군체육부대)과 의기투합해 남자 사브르 단체전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