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믿고 보는 한국 여자양궁이었다. 여자 양궁 대표팀이 올림픽 단체전 10연패의 대위업을 달성했다.
임시현(21·한국체대), 남수현(19·순천시청), 전훈영(30·인천시청)으로 이뤄진 한국 여자양궁 대표팀은 29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레쟁발리드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 결승에서 중국을 5-4(56-53 55-54 51-54 53-55 <29-27>)로 물리쳤다. 이로써 한국 여자 양궁은 단체전이 신설된 1988 서울부터 2024 파리까지 36년간 단 한 번도 패하지 않고 10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여자 양궁이 10번의 올림픽이 진행되는 동안 선수들의 면면은 바뀌어도 단체전 ‘패권’을 절대 놓치지 않는 것은 이전 올림픽 수상 실적 등의 ‘전관예우’나 ‘계급장’은 떼고 오로지 국가대표 선발전 결과에 따라 태극마크를 결정하는 철저한 원칙 덕분이다.
3년 전 2020 도쿄에서 안산(23·광주은행)은 여자 단체전과 개인전, 혼성전까지 모두 석권하며 한국 선수로는 하계올림픽 최초로 3관왕에 오른 바 있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까지만 해도 태극마크를 달고 있었지만, 올해 국가대표 3차 선발전에서 탈락하면서 파리 올림픽 출전이 좌절되고 말았다. 한국 양궁 시스템이 과거 실적엔 전혀 연연하지 않고 현재 시점의 기량만으로 공정하게 태극마크를 부여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이번 여자 양궁 대표팀을 바라보는 시선엔 우려도 적지 않았다. 올해 치러진 월드컵 1,2차 대회 단체전에서 중국에게 패했기 때문. 물론 올림픽 금메달보다도 더 어렵다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뚫어낸 선수들이기에 기량은 의심할 필요는 없지만, 세 선수 모두 올림픽 경험은 전무하다는 것도 걸리는 요소였다. 이번 올림픽 전까지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던 전훈영 역시 “제가 팬 입장이어도 우려가 될 것 같다. 잘 못 보던 선수니까요. 하지만 짧지 않은 선발전이나 평가전을 제가 다 뚫고 올라온거라 어쩔 수 없다. 그럼 어떡해요? 공정한 선발 과정을 뽑혔는데...”라며 우려의 시선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경험 부족에 따른 우려도 압도적인 실력 앞에서는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 올림픽 랭킹라운드에서 임시현과 남수현이 1,2위를 차지하며 기량을 입증했다. 다만 ‘맏언니’ 전훈영은 랭킹라운드에서 13위에 머물렀고, 이날 단체전 8강에서도 8점 4발, 7점 1발을 쏘는 등 부진했다.
네덜란드와의 4강도 슛오프 끝에 간신히 결승에 오르면서 이번엔 중국에게 패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순간, 전훈영이 맏언니답게 ‘하드캐리’했다. 10연패가 걸린 결승에서 쏜 화살 9발 중 무려 6발을 10점에 명중시켰다.
압도적인 실력에는 위기 상황에 몰리면 더욱 강해지는 멘탈리티도 포함된다. 결승에서 1,2세트를 모두 따내며 4-0으로 앞서나간 한국은 3,4세트를 내리 내주고 4-4 동점으로 슛오프에 돌입했다.
세 선수가 각각 한 발씩 쏴서 승부를 겨루는 슛오프에선 실수가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올림픽 10연패가 각각의 한발로 결정되는 절체절명의 순간. 전훈영과 임시현은 10점, 남수현이 9점을 쏴 합계 29점으로 27점에 그친 중국을 가볍게 이겼다. 왜 한국 여자양궁이 단체전에서 10연패의 신화를 이룩해낼 수 있는지, 그 위엄과 품격이 제대로 드러난 한 판이었다.
이번 여자양궁의 올림픽 단체전 10연패는 스포츠를 넘어 우리 사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특히 공정과 상식을 그리 부르짖으면서도 불공정과 몰상식이 판을 치는 정치권은 오로지 실력만으로 기회와 자격을 부여하는 여자 양궁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