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영의 ‘황금세대’는 허상이었나… ‘진짜 경쟁력’ 검증하는 2024 파리 계영 800m에서 6위로 고개를 숙였다

한국 수영의 ‘황금세대’는 허상이었을까. 3년 전 2020 도쿄에서 황선우(21·강원도청)가 혜성 같이 등장한 이후 김우민(23·강원도청), 이호준(23·제주시청) 등 빼어난 기량의 또래 선수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한국 수영은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이하는 듯 했다.

 

30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라 데팡스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수영 남자 계영 800m 결승 경기에서 황선우, 김우민, 이호준, 양재훈이 경기를 마친 뒤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 수영은 과거 ‘마린보이’ 박태환(35)이라는 불세출의 천재 한 명에게 의존했다. 박태환은 2008 베이징과 2012 런던, 두 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2008 자유형 400m), 은메달 3개(2008 자유형 200m, 2012 자유형 200m, 400m)를 획득하며 한국 수영의 역사를 다시 썼다. 그를 보고 수영에 입문한 선수들이 성인 무대에 데뷔해 뚜렷한 업적을 내자 이제 한국 수영은 외로운 천재 한 명이 아닌 세계적 수준의 선수 여럿이 함께 이끄는 황금세대가 등장한 것으로 보였다.

 

남자 계영 800m는 황금세대의 상징과도 같은 종목이었다. 황선우와 김우민이 ‘쌍두마차’가 되어 출전하는 이 종목에서 한국은 지난해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7분01초73으로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며 한국 수영 단체전 사상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합작했다. 지난 2월 도하 세계선수권에서도 7분01초94로 2위에 올랐다. 세계선수권 단체전 메달 역시 사상 처음이었다.

 

3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라데팡스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수영 남자 계영 800m 결승에서 김우민이 마지막 영자로 경기를 마친 황선우를 다독이고 있다. 양재훈, 이호준, 김우민, 황선우가 출전한 대표팀은 7분07초26을 기록해 6위를 기록했다. 파리=연합뉴스

2024 파리 올림픽은 전 세계 수영 강국들이 베스트 멤버로 총출동하는 대회로, 황금세대의 ‘진짜 경쟁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시험하는 무대였다. 그동안의 성과가 증명하기 위해 황금세대들은 훈련에 집중했다.

 

그러나 세계 무대의 벽은 아직 높았다.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결선에 오르긴 했지만, 아직은 세계 정상권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됐다.

 

3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라데팡스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수영 남자 계영 800m 결승에서 한국 마지막 주자 황선우가 경기를 마친 뒤 아쉬워하고 있다. 파리=연합뉴스

양재훈(26·강원도천), 이호준, 김우민, 황선우 순으로 나선 한국은 31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파리 라 데팡스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수영 경영 남자 계영 800m 결승에서 7분07초26으로 9개국 중 6위에 그쳤다. 도쿄 올림픽 챔피언 영국이 유일한 6분대인 6분59초43으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고, 미국이 7분00초78로 2위, 7분01초98의 호주가 3위에 올랐다.

 

첫 영자인 양재훈이 1분49초84로 최하위인 9위에 처지면서 일찌감치 메달권에선 탈락했다. 양재훈이 최하위로 처진 여파를 이호준도 영향을 받아 200m를 역영하는 동안 계속 9위에 머물렀다. 이호준의 200m 기록은 1분46초45였다.

 

30일(현지시간) 프랑스 낭테르 라 데팡스 아레나에서 열린 2024파리올림픽 수영 계영 남자 800m 결승전에서 김우민이 역영하고 있다. 낭테르=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자칫하면 최하위로 레이스를 끝마칠 위기 상황을 타개한 것은 3번 영자 김우민이었다. 자유형 400m에서 동메달을 따내는 등 대표팀 내에서 가장 컨디션이 좋은 김우민이 페이스를 계속 끌어올리면서 8위로 달리던 이스라엘과의 격차를 줄였고, 마지막 200m 구간에서 이스라엘을 제치고 8위로 올라섰다. 김우민의 200m 기록은 결승을 뛴 4명 중 가장 좋은 1분44초98이었다.

 

김우민이 앞서 있는 팀들과의 격차를 많이 줄여준 덕분에 마지막 영자 황선우가 두 팀을 제치며 6위까지 올랐지만, 황선우 구간 기록도 1분45초99로 평소보다는 훨씬 저조했다.

 

30일(현지시간) 프랑스 낭테르 라 데팡스 아레나에서 열린 2024파리올림픽 수영 계영 남자 800m 결승전에서 황선우가 역영하고 있다. 낭테르=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이 멤버들로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세웠던 한국 기록 7분01초73을 찍었다면 동메달을 딸 수 있었지만, 이날 한국 대표팀은 자신들의 기록보다 5초 이상 느렸다. 반면 메달을 딴 3개국은 평소와 비슷한 기록을 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패였던 셈이다.

 

특히, 에이스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를 받았던 황선우의 부진이 뼈아프다. 주종목인 자유형 200m에서 결승에도 오르지 못했던 황선우는 자유형 100m에서도 48초41, 전체 16위로 준결승에 턱걸이한 뒤 계영 800m에 집중하고자 준결승 출전을 포기했다. 그럼에도 계영에서도 자신의 최고 기록에는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을 냈다. 황선우 본인조차 이해할 수 없는 부진이다. 그는 “훈련도 잘했고, 자신감도 있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 나도 이해할 수 없다. 앞선 대회에서 늘 메달을 따서 지금 상황이 더 혼란스럽다”면서 “아직 배워야 할 게 많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내 수영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도 됐다. 올림픽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분석과정을 거쳐 수영에 더 전념하겠다”고 다짐했다.

 

30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라 데팡스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수영 남자 계영 800m 결승 경기에서 김우민, 이호준이 경기를 마친 뒤 서로 격려하고 있다. 파리=뉴시스

김우민은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올림픽에 출전해 결승 무대에 선 건 영광이다. 결과는 아쉽지만, 우리가 3년 동안 준비한 과정은 의미가 있었다”라며 동료들을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