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전멸할 것”…튀르키예 의회 ‘떠돌이 개 안락사’ 법안 통과

튀르키예 의회가 떠돌이 개를 안락사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승인하자 야당과 동물권 단체 등이 반발에 나섰다.

 

특히 해당 법안은 지방자치단체에 유기동물 보호소 확충 등을 강제해 올해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야권 탄압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23일(현지시간) 열린 이스탄불 유기견 학살 법안 반대 집회에서 한 개가 “법안 철회”라고 적힌 목걸이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31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튀르키예 의회는 유기동물 개체 수를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은 지자체가 유기동물을 보호소에 수용하고 중성화 수술을 진행하도록 규정했으며 말기 질환을 앓고 있거나 공격적인 성향의 동물 등은 안락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각 지자체는 2028년까지 유기동물 보호소를 짓거나 기존 보호소의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유기동물 통제 책임을 이행하지 않는 지자체장에 대한 처벌 규정도 마련됐다. 반려동물을 유기했을 시 벌금도 2000리라(약 8만4200원)에서 6만리라(약 252만7200원)로 대폭 강화됐다.

 

앞서 튀르키예 정부는 올해 초 수도 앙카라에서 한 어린이가 개에게 공격당해 중상을 입은 후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약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여당인 정의개발당은 “튀르키예 내 400만 마리의 유기동물이 방치돼 있다”며 “특히 유기견 집단으로부터 수많은 사람이 공격을 받는 만큼 법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29일(현지시간) 한 유기견이 법안 철회라고 적힌 플랜카드 위에 누워 쉬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야권과 동물권 단체 등은 해당 법안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일부 지자체가 예산 절약을 위해 유기견 보호보다 질병을 명분으로 살처분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튀르키예는 1910년에도 8만 마리의 유기견들을 이스탄불 근처 섬으로 옮겨 아사하도록 한 사례가 있다.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과 수도 앙카라 등에서도 “생명과 연대가 승리할 것” “법을 폐지해야 한다”며 시위가 이어졌다.

 

이스탄불에 거주하는 시그뎀 악소이는 AP통신과 인터뷰에서 “우리의 눈을 보고 도움을 요청하는 동물은 전멸할 것”이라며 “제가 아는 한 아무도 신이 창조한 생명을 빼앗을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튀르키예 동물 보호소는 총 322개로 수용 능력은 10만5000마리 수준이다. 튀르키예 내 유기동물이 400만 마리 이상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4년 안에 이 수준에 맞추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올해 초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야권을 겨냥한 법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1야당 공화인민당의 외즈귀르 외젤 대표는 “이 법안은 명백히 위헌이며 생명권을 보호하지 않는다”며 “지자체가 가진 권한으로 법안이 규정한 부담을 완전히 충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야당은 튀르키예 헌법재판소에 해당 법안의 취소를 요청할 계획이다. 이 법안을 이행하지 않겠다고도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