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한국인만 급발진 주장”… 제조사 책임론 힘 빠지나 [뉴스+]

시청역 운전자 ‘조작 미숙’ 발표 속 귀추 주목
전문가 “ECU에 불안정 전압 땐 풀악셀 현상”
제조사 입증책임 도입 등 법 개정 필요성 제기

‘유독 한국 사람들만 급발진을 주장한다’ ‘급발진으로 인정된 사례가 없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는 무조건 선다’.

지난 7월 1일 발생한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 현장의 파손된 차량 모습. 뉴스1

급발진 현상을 부인하는 말들이다. 9명의 사망자를 낸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를 수사해 온 경찰이 사고 원인을 가해 운전자의 운전조작 미숙으로 결론 내리면서, 차량 결함을 주장하는 사고에서 급발진 가능성을 부정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고의 원인을 무조건 급발진으로 돌리는 것도 문제지만, 급발진 현상이 국내외에서 입증된 만큼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급발진 의심 사고에서 차량 결함 여부를 소비자에게 입증하도록 하는 현행 제조물 책임법을 손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류재혁 서울 남대문경찰서장은 1일 오전 시청역 역주행 사고 수사결과 발표 브리핑을 열고 “피의자는 차량 결함으로 인한 사고라는 주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으나 피의자와 주장과 달리 운전조작 미숙으로 확인된다”고 밝혔다. 이어 “국과수 감정 결과 가속장치·제동장치에서 기계적 결함은 발견되지 않았고 사고기록장치(EDR) 또한 정상적으로 기록되고 있었다”며 “EDR 분석에 따르면 제동 페달(브레이크)은 사고 발생 5.0초 전부터 사고 발생 시(0.0초)까지 작동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최근 급발진 의심 사고 페달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되면서 급발진 주장이 운전자의 착각에서 비롯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도 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지난 2월27일 자동차 국제기준제정기구(유엔 WP29.) 산하 페달 오조작(ACPE) 전문가 기술그룹 회의에서 지난해 11월1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주택가에서 발생한 급발진 주장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을 발표했다. 해당 영상에서 운전자는 주장과 달리 브레이크가 아닌 가속 페달을 수차례 밟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11월 발생한 급발진 주장 사고 차량의 페달 블랙박스 영상. 운전자는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엔유럽경제위원회 제공

하지만 전문가는 일부 사례만 가지고 급발진 현상 자체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짚었다.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세미나에서 반주일 상명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는 이러한 주장이 “지식공동체에 대한 부정”이라고 꼬집었다. 이미 국내외 재현 연구에서 급발진 가능성이 입증됐다는 설명이다.

 

반 교수는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급 저널에 등재된 국내 연구진 논문에서 ECU에 불안정한 전압이 전해지는 경우 마치 풀악셀을 밟은 것처럼 스로틀 밸브(출력 조절 장치)가 100% 개방될 수 있다는 걸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3년 미국 도요타 캠리 급발진 관련 소송에서도 소프트웨어 컨설팅업체 바그룹(Barr Group)의 마이클 바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수천 시간의 코딩 검증으로 급발진이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걸 밝혔다”고 덧붙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이 토론회에서는 입증책임 전환과 비밀유지명령제도, 문서제출명령제도 강화를 핵심으로 한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사단법인 소비자와함께 공동대표 황다연 변호사는 “소비자가 제조물 결함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제조사가 결함 없음을 입증하도록 하고 영업비밀을 빌미로 핵심 증거가 될 수 있는 자료 제출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회에는 유사한 내용으로 제조물 책임법 일부개정법률안 5건이 계류 중이다.

 

한편 시청역 역주행 사고 가해 운전자 차모(68)씨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업무상 과실치사상) 위반 혐의로 이날 오전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차씨는 지난달 1일 오후 9시27분 시청역 인근 웨스틴조선호텔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빠져나오다가 가속해 인도로 돌진했다. 이 사고로 9명이 숨지고 차씨 부부 등 7명이 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