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시작되는 8월, 우리는 뜨거웠던 광복의 기쁨을 느낀다. 1945년 8월15일에 일본이 항복하면서 2차대전은 연합국의 승리로 막을 내렸고,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나라도 광복을 맞이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온전한 힘으로만 이룬 광복이 아니었기에 한반도는 곧 미·소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오늘날까지 정전의 불안정한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동안에 독립을 향한 우리의 노력은 멈춘 적이 없었다. 특히 현재의 대한민국으로 그 법통이 계승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주축이 되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임시정부는 국가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군대를 확보하려 했고, 한국광복군은 임시정부의 정규군으로 탄생했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 후 미국이 2차대전에 본격적으로 참전하자, 임시정부는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승전국이 되려는 전략을 수립했다. 이에 광복군은 연합군과 함께 군사작전을 수행했다. 인면전구공작대를 인도, 미얀마 전선으로 파견하여 영국군과 연합작전을 펼쳤다. 이들의 규모는 소수였지만, 첩보 획득과 심리전을 통해 일본군을 패퇴시키는 데 기여했다. 특히 일본군의 임팔작전 중 적군에 포위된 영국군 17사단의 성공적 퇴각에는 광복군이 획득한 정보가 결정적이었다는 사실이 최근 영국 문서고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또한 광복군은 미국이 일본 본토 상륙 전에 한반도를 거점으로 마련하기 위한 미 전략사무국(OSS)의 독수리작전에 참여했다. 비록 일본의 항복으로 독수리작전은 실행되지 못했지만, 이는 한미가 공동으로 진행한 최초의 군사작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