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도 숨이 턱”… 배달기사 ‘열대야와 전쟁’

밤에도 도로 표면 30도… 땀범벅
배달 요청 거절 땐 업무에 타격
고용부 휴식 권고 현장선 먼얘기

“새벽인데도 더워서 숨이 턱턱 막혀요.”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강남취·창업허브센터 뒤편 이동노동자 전용 쉼터 ‘얼라이브 스테이션’에서 한 남성이 책상에 기대어 잠을 청하고 있다. 윤솔 기자

깊은 밤인 4일 오전 2시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만난 배달기사 A씨는 헬멧 사이로 연신 흐르는 땀을 닦아내기 바빴다. 전국적으로 열대야가 열흘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이 시간 지역 기온은 28.2도, 습도는 66%로 체감온도가 29도에 달했다. A씨가 배달을 위해 한 오피스텔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2분22초 남짓. 그사이 A씨의 옷은 소금기로 얼룩진 채 땀범벅이 됐다. 오피스텔이나 상가 등지의 실내공간이 새벽에는 냉방장치를 꺼둔 채 창문까지 닫아두는 경우가 많아 사우나처럼 푹푹 찌는 탓이다. 가쁜 숨을 달랠 틈도 없이 갓길에서 대기하던 A씨의 휴대전화에는 곧바로 다음 배달을 알리는 진동이 울렸다. 

 

잠들기가 어려울 정도의 무더위가 밤에도 이어지면서 심야시간대 음식이나 택배를 나르는 배달노동자들의 고충도 커지고 있다. 낮 동안 달궈진 아스팔트의 열기가 밤에도 식지 않으면서 도로 위를 달리는 배달노동자들은 더위를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다. 

 

기자가 이날 화곡동 일대에서 배달 오토바이가 주로 다니는 주택가 도로 10곳의 표면 온도를 적외선 온도기로 측정한 결과 29.6∼30.7도 사이로 나타났다. 배달을 위해 잠시 정차한 오토바이 3구의 핸들·시트 부위의 온도는 30~32.4도였다. 배달과정에서 대부분 헬멧을 착용한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배달노동자가 체감하는 온도는 이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4일 오전 2시쯤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일대에서 배달을 위해 건물 앞에 세워둔 오토바이 온도를 측정해 본 결과 배기통에서 거리가 있는 핸들과 시트 부위의 표면 온도가 30∼32도를 웃돌았다. 윤솔 기자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한 배달노동자 쉼터가 더위를 잠시나마 식힐 수 있는 공간이지만, 이마저도 서울 일부 지역에만 위치해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인 경우 정부는 시간당 10분 휴식시간 제공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는 말 그대로 권고인 데다 근로자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배달노동자에겐 그나마도 먼 얘기다. 휴식 공간보다 더 부족한 건 업무 중 더위를 식힐 시간이다. 라이더에게 배달을 요청하는 ‘콜’이 들어왔을 때 라이더가 ‘거절’을 하는 경우 수락률에 타격을 주게 된다. 휴식시간을 확보하려면 완전히 ‘업무 종료 상태’(오프라인)로 전환해야 한다.

 

라이더 B씨는 “오프라인으로 전환하면 배달 대기조차 안 하는 상태가 되는데, 배달을 취미로 하는 게 아닌 이상 1시간마다 그러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대부분 콜과 콜 사이에 뜨는 시간을 휴식시간으로 쓴다”고 말했다. 배달 플랫폼은 폭염이 발효됐을 때 배달 수수료에 1000원 남짓을 더해주는 ‘기상할증료’를 제공하는데, 이것이 휴식보단 경쟁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한 주택가에 음식배달 종사자들이 배달을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라이더 이모(48)씨는 “단가를 올리면 타는 사람이 생기니까 (플랫폼은) 돈만 더 주면 되는구나 생각하면서 라이더를 인간 취급 안 하는 것 같다”며 “기온이 너무 높을 땐 배달 수수료를 높일 게 아니라 작업을 멈추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몇몇 플랫폼은 기상할증료 기준도 뚜렷하지 않아 라이더들의 민원 제기에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동노동자에겐 그나마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한 배달노동자 쉼터가 더위를 잠시나마 식힐 수 있는 공간이다. 강남구의 경우 지난해 5월 이들이 작업 중에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역삼동 서울취창업센터, 서울파이낸스센터 옆에 작은 이동노동자 전용 쉼터를 마련했다. 신논현역 도보 5분 거리에는 휴(休)서울이동노동자 서초쉼터가 2016년부터 운영 중이다. 하지만 이처럼 접근성 좋은 위치에 복수의 쉼터가 마련된 지역은 많지 않다.

 

쉼터에서 만난 대리기사 장모(52)씨는 “쉼터가 생기기 전에는 버스정류소나 편의점 벤치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대기해야 했다”며 “앞으로 다른 지역에도 이런 간이 쉼터가 더 많이 생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더위로 인한 고통은 적어도 열흘 더 이어질 전망이고 열대야도 지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기상청은 이날 오전 발표한 중기예보에서 이달 7~14일 낮 기온이 30~36도로 평년을 웃돌며 지금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 기간 전국적으로 최고 체감온도가 35도 안팎으로 오를 전망이다.

 

밤에도 무더위는 가시지 않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과 광주는 지난달 21일 이후 3일 밤부터 4일 새벽까지 14일째, 제주는 15일 이후 20일째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다. 강릉은 16일 연속 열대야가 나타나 역대 최장 일수를 기록했다. 간밤 서울의 최저기온은 27.3도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