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처럼 회사가 연차를 특정일에 쓰라고 지정할 경우 사업주는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5일 근로기준법 제60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주게 돼 있다.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를, 근로 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 또는 1년간 80% 미만 출근한 근로자에게는 1개월 개근 시 1일의 유급휴가가 주어진다. 휴가 기간에 대해서는 취업규칙 등에서 정하는 통상임금 또는 평균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상시 근로자 수 5인 이상 사업장이면 전부 적용되는 사항이다.
만약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사용자가 연차휴가 사용을 거부한다면 이는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다만,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는 사용 시기를 변경할 수 있다. 이때 기업의 규모, 업무의 성질, 작업의 시급성, 업무 대행의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게 돼 있다. 만약 별도의 규정이나 사업 운영에 대한 큰 지장이 없는데도 근로자의 연차 사용을 강제한다면 권리 남용으로 위법행위에 해당한다.
노동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5월31일∼6월10일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올해 여름휴가 계획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20.4%가 ‘없다’고, 31.1%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직장인 절반 이상이 올해 여름휴가를 포기하거나 유보한 셈이다.
여름휴가를 포기하거나 유보한 이유로는 ‘휴가 비용이 부담돼서’가 56.5%로 가장 많았다. 이어 ‘유급 연차휴가가 없거나 부족해서’(12.2%), ‘휴가 사용 후 밀려있을 업무가 부담돼서’(10.9%), ‘휴가를 사용하려니 눈치가 보여서’(7.8%) 등 순이었다.
조사에서는 회사가 사용 시점을 강제한 갑질 사례도 드러났다. 직장인 B씨는 “여름휴가를 직급순으로 정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이미 배우자 일정에 맞춰 여름휴가 계획을 짜고 비행기도 예약했는데, 회사는 ‘위 직급들이 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날 아래 직급들이 사용할 수 있다’고 정했다”고 했다. C씨도 “회사 여름 휴가를 지정해서 강제로 보내는 게 맞냐”며 “팀원들끼리도 사정이 다 다른데 부서별로 여름 휴가 일정을 통일하라고 했다”고 토로했다.
직장갑질119 김도하 노무사는 “노동자가 노동청에 쉽게 신고하지 못한다는 점을 악용해 사업장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없는데도 사용자의 연차시기 변경권을 남용하거나, 사업주의 여름휴가 사용 시기에 맞춰 강제로 연차를 소진하게 하는 일이 매년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5인 미만 사업장과 플랫폼,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연차마저 없는 상황”이라며 “노동자의 휴식권 보장에 대한 인식 개선과 노동법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위한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