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 앉은 코스피… 상장 종목 936개 중 12개 빼고 하락 [코스피 2500선 붕괴]

4년 5개월 만에 ‘서킷브레이커’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 모두 추락
외인들, 코스피만 1.5조 매도 폭탄

美 실업률 최악·이란 보복 초읽기에
엔비디아 등 AI기업 부진까지 겹쳐
일각 ‘美 연준 금리 인하 실기론’ 제기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자본시장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국내 코스피와 코스닥이 5일 장중 10% 넘게 급락한 것은 미국발 경기침체에 대한 공포가 시장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올해 주식 상승을 견인했던 미국 빅테크 업체들이 흔들리면서 정보기술(IT) 관련주 비중이 큰 국내 주식시장도 한파를 면치 못했다. 엔비디아를 사모으던 ‘서학개미’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투자한 ‘동학개미’도 모두 급락하는 주가를 보며 ‘개미지옥’을 경험했다.

코스피가 전 거래일(2776.19)보다 234.64포인트(8.77%) 하락한 2441.55에 장을 마친 5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코스닥 지수는 전 거래일(779.33)보다 88.05포인트(11.30%) 내린 691.28에 거래를 종료했다. 뉴시스

이날 코스피는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 모두가 하락했다. 전체 상장종목 936개 중 상승 마감한 종목은 단 10개 종목, 보합은 2종목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모두 하락 마감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날 코스피에서 1조5281억원 순매도하면서 매도 폭탄을 들이부었다. 이는 2022년 1월 27일 1조7141억원을 순매도한 이후 약 2년6개월 만에 나온 최대 순매도 규모다.

 

무엇보다 미국 고용지표가 예상보다 안 좋게 나온 것이 주가하락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현지시간) 7월 실업률이 4.3%로 작년 초 저점 대비 거의 1%포인트 상승했고, 신규 일자리가 11만4000개로 지난 4월을 제외하면 2020년 말 이후 최소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여기에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을 이끌었던 엔비디아의 최신 제품에서 설계 결함이 발견됐다는 보도도 악재로 작용했다.

국내 투자자도 타격을 입었지만, 미국 테크업체들에 주로 투자해온 ‘서학개미’들은 상당한 손실이 불가피하다. 서학개미들은 ‘M7’(매그니피센트 7, 구글·마이크로소프트·메타·아마존·애플·엔비디아·테슬라)으로 불리는 미국 빅테크업체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데 경기침체 및 AI 실적에 대한 우려가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달 2일부터 이달 1일까지 한 달간 엔비디아 주가는 10.97% 떨어졌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최고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가 암살되면서 중동 정세가 악화되고, 버크셔 해서웨이의 애플 지분 축소, 일본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에 따라 ‘엔-캐리 트레이드(엔화의 낮은 금리를 이용한 투자기법)’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 또한 투자시장을 움츠러들게 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국 대체거래소(ATS) ‘블루오션’은 주간거래 서비스를 제공 중인 국내 모든 증권사들에 한국시간 기준 이날 오후 2시45분 이후 체결분에 대한 매매를 일괄취소 처리한다고 통보했다. 국내 증권사들의 미국 주식 주간거래 서비스는 미 금융산업규제국(FINRA)과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야간 거래 기능을 승인받은 대체거래소 블루오션과의 제휴를 통해 서비스가 제공된다. 미국 주식시장 개장 이후 추가 하락을 예상한 투자자들의 주문량이 몰리면서 문제가 생긴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 기대와 달리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에 나서지 않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 책임론도 제기된다. 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주식시장 투자자들이 경제가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 경제를 응원하던 입장에서 불황을 우려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고 보도했다. 미국 주식시장에서는 경기지표가 안 좋게 나오면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지면서 증시에 호재로 작용했는데, 지난주에는 고용지표가 매우 안 좋게 나왔는데도 주가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증시는 당분간 변동성 높은 장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연설하는 22일의 ‘잭슨홀 미팅’이 이번 변동성 장세의 1차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