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천의 대단지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벤츠 전기차에 중국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파라시스 에너지’의 제품이 탑재된 것으로 확인됐다. 파라시스 배터리는 중국 내에서 화재 위험으로 리콜 사례가 있었던 제품이다.
5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지난 1일 오전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서 불이 붙은 메르세데스-벤츠 EQE 세단의 배터리 셀은 중국 파라시스의 제품이다. 주로 고급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파라시스는 매출과 출하량 기준 모두 세계 10위에 있는 업체다. 다만 2021년 3월 중국 국영 베이징자동차그룹(BAIC)은 파라시스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3만1963대가 ‘특정 환경에서 배터리 화재 발생 가능성이 있다’며 리콜을 시행한 바 있다.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해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합동감식을 이날 오전 10시30분부터 진행했다. 감식팀은 최초 발화점으로 지목된 벤츠 전기차에서 배터리팩 등 주요 부품을 수거하려 했으나 위험성이 제기돼 분리 작업을 중단했다. 이 차량은 3일 가까이 주차돼 있던 상태에서 폭발과 함께 불이 난 것으로 드러났다.
주민들은 화재 이후 닷새째 이어진 단전·단수로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이날 오후 아파트 단지 곳곳에서는 입주민들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한 주민은 “에어컨을 틀 수도, 물도 나오지 않아 도저히 집에 머무는 게 불가능하다”면서 “전쟁통도 아니고 차량 1대 폭발로 1500여가구 아파트가 붕괴된 것 같고 구성원들은 모두 패닉에 빠졌다”고 토로했다.
480가구에 전기가 끊기면서 냉장·냉동고에 있는 음식물도 다 상했다는 한 주부는 “밤에는 어두워서 못 들어가고 낮 시간을 이용해 엉망이 된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음식 썩는 냄새가 온 집안을 뒤덮으며 진동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초 관할 구청은 복구 시점을 사고 직후 2∼3일로 예상했으나, 이제는 기약이 없는 상황이라 더욱 답답함을 호소하며 분통을 터뜨린다. 서구 측은 수돗물과 전기 공급을 이르면 각각 6일, 7일에 가능한 것으로 알렸지만 이마저도 현장 상황에 따라 더뎌질 수 있다.
인근 대피소로 몸을 피한 이들은 전기차에 대한 트라우마를 호소한다. 전날 소방당국의 협조로 가정에 들렀다는 중년 여성은 시커먼 분진을 뒤덮어 쓴 소파, 식탁 등의 살림살이를 본 자리에서 눈물이 흘렀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화재로 주차된 전기차나 충전소만 봐도 겁이 난다”면서 재차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은 시민 400여명이 무더위 속에 피난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며 피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