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없이 변화 자유로운 컨테이너… 젊음을 닮았다 [스페이스도슨트 방승환의 건축진담]

(40) ‘임시방편 건축물’ 커먼그라운드

임시·가변·실험적 인상 주는 소재
컨테이너로 만든 10~20대 타깃 몰
200여개 상자 국내 최대 가건물
언제든 철거 쉽게 팝업 형태 운영
업체, 리스크 줄이려 유연한 선택
‘팝업 성지’ 성수동과 함께 핫플 부상

건축물은 한번 지어지면 바뀌기 어렵다. 개·수선을 통해 다른 용도가 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처음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기란 쉽지 않다. 또 다른 특징은 건축물이 들어서는 땅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용도지역이나 용도지구와 같이 땅에 적용된 도시계획 지침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건축물이 땅의 형태와 주변 맥락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건축물은 땅에 고정돼 있고 한번 지어지면 영구적이며 지속적이다.

몇몇 건축가는 건축물의 이런 특성을 극복해 보려고 했다. 대표적으로 1960년대 대중매체를 통해 전위적인 아이디어를 개진했던 영국의 건축 그룹 아키그램이 있다. 아키그램에 속해 있던 건축가들은 자유롭게 이동하며 자급자족할 수 있는 거대한 구조물, ‘워킹 시티(The Walking City)’나 표준화된 부품 형태의 주거 공간이 틀에 끼워지기도 하고 빠지기도 하는 ‘플러그인시티(Plug-in-City)’를 제안했었다.

서울에서 컨테이너 야적장 같은 커먼그라운드의 모습은 분명 낯설다. 하지만 커먼그라운드는 컨테이너의 유동적이고 임시적이며 가변적인 이미지와 젊음으로 상징되는 10∼20대를 타기팅하여 매번 변화하는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는 ‘신진대사’라는 의미의 ‘메타볼리즘’이라는 건축 사조가 유행했는데, 이들은 여러 상황에 유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생물체와 같은 건축물을 상상했다. 대표적으로 건축가 구로카와 기쇼는 도쿄의 긴자 지구 인근에 사람이 거주하는 캡슐을 마치 열매처럼 매달아 놓은 건축물을 설계했다. 건축가는 25년마다 캡슐을 교체해 거주자들이 필요로 하는 사항을 충족시킴으로써 시대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카긴 캡슐 타워’라고 불린 이 건축물은 재건축을 위해 2022년에 철거됐다.



건축물을 통해 임시적이고 가변적이며 그래서 실험적인 인상을 전달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주목받는 방안으로 ‘컨테이너’가 있다. 최근 컨테이너로 지어진 건물들의 건립 목적을 보면 스타트업 지원을 통한 창의적인 산업 육성 그리고 이를 위해 유연하게 쓰일 수 있는 공간 조성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런 연상의 과정은 실제적이거나 기능적이기보다는 은유적이고 상징적이다.

컨테이너를 이용한 건물 중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건축물은 건대입구역 인근에 있는 커먼그라운드다. 서울에 200개가 넘는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야적장 같은 커먼그라운드의 모습은 확실히 낯설다. 하지만 주변에 남아 있는 소규모 공장과 자동차 정비소 그리고 바로 옆을 지나가는 고가 철도까지 함께 보면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2015년 4월에 개장한 커먼그라운드는 코오롱FnC가 새로운 유통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지은 복합 쇼핑몰이다. 코오롱FnC는 신규사업 진출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8년 동안만 팝업 형태로 쇼핑몰을 운영하기로 하고 당시 택시 차고지로 사용되었던 땅을 일시적으로 빌렸다. 쇼핑몰 사업이 예상보다 안 될 경우 미련 없이 철수하고 그 실패의 흔적을 쉽게 지우겠다는 생각이다.

주변의 소규모 공장과 자동차 정비소 그리고 고가 철도와 어울리는 컨테이너들.

컨테이너는 건축용으로 생산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화물 운반용으로 쓰인다. 화물 운반을 위한 컨테이너는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어디로든 이동한다. 이는 건축이 가질 수 없는 속성이다. 그래서 컨테이너가 건물이 되는 순간 땅에 고정되어 있다는 한계가 사라질 것 같다. 비슷하게 야적장에 쌓여 있는 컨테이너는 언젠가 뿔뿔이 흩어져 다시 조합된다. 가장 아랫줄에 쌓여 있었던 컨테이너는 다른 야적장에서 가장 윗줄로 이동할 수 있다. 그래서 고정된 위치가 없는 컨테이너가 건물이 되면 임시적이며 가변적인 속성을 가지게 될 것 같다.

컨테이너의 유동적이고 바뀔 수 있는 속성은 코오롱FnC가 커먼그라운드의 타깃으로 설정한 10∼20대의 성향을 대변한다. 당시만 해도 쇼핑몰 사업을 주도했던 백화점 3사는 구매력이 떨어지는 10∼20대를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코오롱FnC는 주변 건대 상권과 당시 급부상하고 있었던 성수동 상권을 감안하고 무엇보다 5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롯데백화점과의 정면 대결을 피해야 했다. 그래서 커먼그라운드의 콘셉트를 “10∼20대를 위한 광장이자 시장”으로 설정했다.

10∼20대의 상징은 ‘젊음’이다. 젊음은 항상성을 거부하고 새로움을 추구한다. 불안해 보이기도 하지만 무언가에 대한 고정관념이 다른 나이대에 비해 덜하다. 그들에게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쇼핑몰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마감재로 덧씌운 기존 백화점보다 덜 부담스럽다. 심지어 커먼그라운드에는 묵직한 현관문이 없다. 그래서 주변 길을 배회하다 굳이 쇼핑을 위한 목적이 아니더라도 가볍게 들고 나갈 수 있다.

이런 공간적 특성을 파악한 몇몇 브랜드는 기성세대보다 젊은 세대가 더 많이 소비할 수 있는 제품의 발표회나 팝업 행사를 이곳에서 열고 있다. 커먼그라운드의 두 건물 사이에 있는 광장은 이런 이벤트를 넉넉히 받아주는 장소다.

여러 개의 컨테이너를 이어 붙이고 사이의 칸막이를 제거하여 넓은 실내 공간을 확보한 마켓 홀.

그런데 컨테이너의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며 임시적인 특성이 컨테이너로 지어진 건물의 속성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컨테이너의 규격화된 모듈이 갖는 공간의 한계 때문이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화물 운반이 쉽도록 길이 12.19m, 폭 2.44m, 높이 2.59m(표준형 40피트 기준)로 정해진 컨테이너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행위는 제한적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컨테이너끼리 붙이고 그사이의 칸막이를 없애야 한다. 그런데 칸막이를 없애는 순간 컨테이너는 더 이상 컨테이너가 아니라 모듈화된 구조체일 뿐이다. 또한 컨테이너가 놓인 땅에 맞는 용도와 기능을 담기 위해 몇 개의 컨테이너가 합쳐져 하나의 공간을 만드는 순간 그 건물은 다른 대지로 이동할 수 없다. 컨테이너 건물은 가변적일 수도, 임시적일 수도 없다.

컨테이너 건물의 확실한 장점은 빠른 시공과 철거다. 이는 임시성이라기보다는 일회성에 가깝다. 왜냐하면 임시성은 필요에 따라 변하는 가변성을 바탕으로 하지만 일회성은 쉬운 폐기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일회성을 주목하고 지어진 컨테이너 건물은 그 필요가 다했을 때 다시 쓰이기보다는 철거된다. 커먼그라운드도 같은 규모의 일반 콘크리트 건물에 비해 공사비는 30% 적게 들었고 공사 기간도 짧았다.

현재 커먼그라운드는 팝업 스토어의 성지인 성수동과 ‘임시변통(Adhocism)’이라는 속성을 공유하고 있다. 커먼그라운드와 성수동은 건축물과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바뀌고 있다. 내일 커먼그라운드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기대되는 이유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