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34)씨는 지난달 지인에게 선물받은 10만원짜리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을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8만9000원에 되팔았다. 지역사랑상품권은 사용 지역과 가맹점이 제한돼 있는데, 이를 현금화한 것이다. A씨는 이렇게 얻은 현금으로 해당 지역과 무관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청바지를 구입했다. 그는 “(앞으로도) 지역사랑상품권을 받으면 현금화해서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하는 지역사랑상품권을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거래하는 등 불법 유통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당초 지역 소비를 촉진하겠다는 취지에서 지자체 등의 재원을 투입해 발행한 것인데, 음성화된 불법 거래나 ‘상품권 깡’이 만연한 실정이다. 국회에서 야권이 단독 처리한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민생회복지원금지급 특별조치법)이 실제 시행된다면 시중에 상품권이 대량으로 풀려 이 같은 불법 현금화로 시장을 교란시킬 수 있단 지적이 제기된다.
6일 한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 ‘사랑상품권’을 검색한 결과 올해 들어 작성된 판매글만 581건이 확인됐다. 지역사랑상품권을 5∼10% 싸게 판매한다는 게시물이 대부분이다. “지역사랑상품권 30만원어치를 27만원에 판매한다”거나 다른 백화점 상품권과 교환을 요구하는 글도 찾을 수 있다.
원가보다 싸게 산 지역사랑상품권을 보다 조직적으로 환전하려는 ‘깡’ 행위도 반복된다. 지역 상인들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동원해 지역사랑상품권으로 물품 구매 없이 허위 결제한 뒤 할인액만큼 이익을 얻는 방식이다. 일부 유통업자들은 상품권 깡을 위한 ‘유령 가게’, 허위 가맹점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범행하기도 한다. 지난해 9월 경북 칠곡군에선 지역 선후배끼리 허위 가맹점을 개설해 6억원이 넘는 지역사랑상품권 할인 보조금을 받아 챙긴 일당이 붙잡히기도 했다. 3000명 가까운 상품권 대리구매자들이 상품권을 10% 싼값에 구매하고 가맹점 10여곳에서 63억원어치를 허위 결제하는 방식으로 돈을 챙겼다.
지역사랑상품권을 재판매하거나 물품 거래 없이 상품권을 현금화하는 행위는 모두 불법이다.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사용자는 상품권을 타인에게 재판매하거나 판매대행점과 가맹점에 상품권 환전을 요청할 수 없게 돼 있다. 가맹점 역시 물건을 판매하지 않거나 용역 제공 없이 지역사랑상품권을 받는 행위는 금지된다.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나 재테크 커뮤니티 등에서 지역사랑상품권이 거래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지자체 관계자는 “개인 간 재판매의 경우 개인을 특정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고 (상품권 깡 관련해선) 가맹점 수가 많아 모니터링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행정안전부가 올해 5월13일부터 31일까지 실시한 ‘2024 상반기 지역사랑상품권 부정유통 일제단속’에선 위반사례 141건이 적발됐다. 깡으로 불리는 부정수취와 불법환전이 56건(39.7%)으로 가장 많았다.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이 시행돼 지역사랑상품권이 많이 유통되면 재판매나 깡 문제가 늘어날 여지가 있다. 해당 법은 전 국민에게 25만~35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을 지역사랑상품권으로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서모(45)씨는 “지원금을 줘봤자 다들 현금화해서 자기들이 사고 싶은 걸 살 뿐, 우리에게 돌아오는 건 별로 없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시 관계자는 “상품권이 많이 풀리는 시기에 이상 거래도 많아지기 때문에 집중 단속해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