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일본 측과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조선인 노동자 동원의 ‘강제성’을 명시해야 한다는 요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일본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는데도 한국이 등재에 동의해 준 셈이어서 ‘굴욕 외교’ 논란이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에게 제출한 ‘강제(force to work)’ 단어 협의에 관한 답변 자료에서 “(사도광산 관련) 전시 내용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강제’라는 단어가 들어간 일본의 과거 사료 및 전시 문안을 일본 측에 요구했으나, 최종적으로 일본은 수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 외교부 설명과 결을 달리한다. 앞서 일본은 한국 측 동의를 얻기 위해 니가타현 사도시 사도광산 인근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조선인 노동자 관련 내용이 담긴 전시공간을 마련했는데, ‘강제’ 표현은 빠지고 ‘징용’ 단어만 들어갔다. 대신 국가총동원법·국민징용령의 한반도 시행, ‘모집’·‘관(官) 알선’ 등에 조선총독부가 관여했다는 사실, 노동자들에게 의무적으로 작업이 부여되고 위반자는 수감되거나 벌금을 부과받았다는 내용 등이 적혔다. 이에 비춰 직접적인 ‘강제’ 표현은 없지만 전시 내용 전체에서 ‘강제성’ 부분이 반영됐다는 게 외교부 입장이었다.
한국 등 21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된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도 ‘강제’를 인정하는 일본 대표 측 언급은 없었고 “모든 관련 세계유산위원회 결정과 이와 관련된 일본의 약속을 명심할 것”이라고 했을 뿐이었다. 2015년 군함도 등 일본 근대산업시설 등재 당시 일본 대표단이 “수많은 한국인과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본인 의사에 반해 동원되고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노역을 당했다”고 인정했던 것과 비교하면, 오히려 후퇴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외교부 측은 이를 두고 “(일본 대표의) ‘명심’ 표현에 과거 약속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 터였다.
한국 정부의 대응 적절성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원식 국회의장은 정부를 향해 사도광산 등재 관련 외교협상 전 과정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우 의장은 이날 입장문에서 “일본 대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강제노역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고,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용어를 사용해 강제성을 재차 부정했는데도 정부는 이를 용인하고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에 동의했다”며 “국회를 대표하는 국회의장으로서 정부에 요구한다. 사도광산 등재를 둘러싼 외교협상의 과정과 내용, 전모를 공개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우 의장은 일련의 과정이 “불법 식민지배와 강제동원 피해국인 ‘대한민국 정부’로서 합당한 대응을 촉구한 국회 결정에 정면으로 반할 뿐 아니라 국민적 상식과 보편적 역사 인식에서 크게 벗어났다”며 “모르고 등재에 동의했다면 외교협상의 실패이고, 알고도 동의했다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앞서 국회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 이틀 전 여야 재석의원 전원 찬성으로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 철회 및 일본 근대산업시설 유네스코 권고 이행 촉구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우 의장 입장문과 관련해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설명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