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불거진 시세 조종 의혹의 ‘정점’으로 꼽히는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검사 장대규)는 8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김 위원장을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홍은택 전 카카오 대표, 김성수 전 카카오엔터 대표는 불구속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16∼17일과 같은 달 27∼28일 총 4일에 걸쳐 SM엔터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경쟁사인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엔터 주가를 공개매수가 12만원보다 높게 고정하는 방식으로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김 위원장이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 사모펀드 운용사 원아시아파트너스 등과 함께 지난해 2월16∼17일, 27일 3일간 363회에 걸쳐 원아시아파트너스 명의로 약 1100억원의 SM엔터 주식을 고가매수·물량소진 주문해 시세조종을 했다고 판단했다.
같은 달 28일에는 홍 전 카카오 대표, 김 전 카카오엔터 대표 등과 공모해 카카오와 카카오엔터 명의로 190회에 걸쳐 약 1300억원 규모의 SM엔터 주식을 사들였다고 봤다. 검찰은 지난달 김 위원장 구속영장 청구 당시 28일 하루간 시세조종 혐의만 적용했지만, 구속 수사를 거쳐 원아시아파트너스 자금이 투입된 나머지 3일에도 김 위원장이 관여했다고 판단했다.
김 위원장은 이 과정에서 카카오와 카카오엔터, 원아시아파트너스의 SM엔터 보유 지분이 ‘5% 이상’에 해당해 주식 당국에 대량 보유 보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원아시아파트너스의 보유 지분을 숨긴 채 보고하지 않은 혐의도 적용됐다.
검찰은 카카오그룹이 카카오엔터의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SM엔터 인수에 나설 필요성이 있었다고 지목했다. 카카오엔터는 2022년 자산이 2조9248억원이었으나 부채가 약 1조5518억원에 이르고 당기순손실이 약 4380억원에 이르는 등 경영이 매우 어려웠다. 검찰은 카카오가 현금성 자산이 풍부한 SM엔터를 인수하게 해 카카오엔터의 경영 상황을 개선하고자 했다고 판단했다. 카카오는 이 무렵 SM엔터가 5770억원의 현금과 4339억원 상당의 처분 가능한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파악했다.
카카오가 불법적인 시세조종을 택한 데는 당시 이수만 전 SM 총괄프로듀서와 카카오 사이 법정 다툼이 영향을 미쳤다. 카카오는 하이브의 공개매수 전 SM엔터와 신주 및 전환사채 인수 계약을 통해 SM엔터 지분 약 9.05%를 값싸게 확보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전 총괄프로듀서가 카카오를 상대로 낸 ‘SM 신주 취득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인용하면서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이 상황에서 카카오가 대항공개매수에 나서면 카카오의 SM엔터 인수 목적이 드러나 가처분 패배가 불 보듯 뻔했고, 이에 원아시아파트너스와 공모해 은밀하게 SM엔터 지분을 끌어올려 인수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카카오가 계열사들을 동원해 계획적·조직적으로 SM엔터 시세조종에 나섰다고 본다. 김 위원장이 그룹 임원들에게 카카오의 SM 인수가 드러나지 않는 방법으로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저지하고 SM을 인수할 것을 지시했고, 임원들은 그에 따라 원아시아파트너스와 카카오·카카오엔터의 자금을 동원해 장내 매집을 실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카카오는 하이브의 공개매수 기간 중 SM엔터 주가 부양을 목적으로 인수전에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을 담은 입장문을 발표하는 등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저지하고자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이 과정에서 엔터 산업과 관계 없는 카카오 자금과 계열사의 운영 자금도 투입됐다.
카카오 임직원들끼리 하이브 공개매수를 저지할 목적이 없었다고 말을 맞추고 관련 대화방을 삭제하는 등 조직적인 증거인멸을 한 정황도 포착됐다.
앞서 금융감독원 특별사법경찰은 하이브와 카카오가 SM엔터 인수를 둘러싸고 서로 공개매수 등으로 분쟁을 벌이자 지난해 10월과 11월 김 위원장 등 카카오 경영진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경기 성남시 카카오 판교아지트 소재 카카오그룹 일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고, 지난달에는 김 위원장을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해 결국 김 위원장은 지난달 23일 구속됐다.
김 위원장과 홍 전 카카오 대표, 김 전 카카오엔터 대표 등 임원진을 재판에 넘김으로써 지난해 10월부터 이어온 검찰의 SM엔터 인수 관련 수사는 일단락될 전망이다. 다만 카카오의 시세조종 의혹 외에도 카카오엔터의 드라마제작사 고가인수 의혹, 카카오모빌리티의 ‘콜 몰아주기’ 의혹, 김 위원장과 카카오의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 관계사 임원들의 횡령·배임 의혹도 살피고 있어 그룹 전반에 대한 수사는 확대될 여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