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텔로’는 모든 테너가 (역할을 맡길) 꿈꾸지만 꿈을 갖는다고 다 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닙니다.”
예술의전당이 18∼25일 선보이는 베르디(1813~1901) 오페라 ‘오텔로’에서 주인공 오텔로 역을 맡은 세계 정상급 테너 이용훈(51)은 ‘오텔로’의 매력과 어려움을 이렇게 말했다. 그가 고국 관객과 만나는 건 지난해 10월 서울시오페라단의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칼라프 역에 이어 두 번째다.
이용훈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우연찮게 ‘투란도트’가 한국 무대 첫 작품이 됐지만 사실 ‘오텔로’를 데뷔작으로 하고 싶었다고 했다. 세계 무대에서 ‘투란도트’ 남자 주인공 칼라프 역으로 100여 차례 공연할 만큼 ‘칼라프 장인’으로 불리지만 고국 무대 데뷔작은 ‘오텔로’이길 원한 것이다. 예술의전당이 2년 전 이용훈에게 국내 오페라 출연을 타진하자 “그럼 ‘오텔로’를 공연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을 정도다. 그는 “마치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듯 어려우면서도 매력적인 작품이라 꼭 오텔로 역할로 데뷔하고 싶었다”며 “훌륭한 프로덕션으로 좋은 멤버들과 오텔로를 고국 땅에서 선보일 수 있게 돼 감격스럽다”고 했다.
베르디가 노년에 발표한 마지막 걸작 ‘오텔로’는 셰익스피어 동명 희곡이 원작이다. 전쟁 영웅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베네치아 장군 오텔로가 의심과 질투 끝에 파멸로 치닫는 비극이다. 오텔로가 부관으로 자기 대신 카시오를 임명한 데 반발한 이아고는 오텔로가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와 카시오 관계를 의심하도록 만든다. 오텔로는 결백을 호소한 데스데모나를 끝내 죽이고 나서야 모든 게 이아고의 계략이었음을 깨닫는다. 자책하다 칼로 가슴을 찌르며 아내 옆에 쓰러진다. 오텔로를 집어삼키는 의심의 씨앗은 북아프리카 출신 무어인(아랍계 이슬람교도)이란 태생적 열등감이다.
이용훈은 “오텔로는 강한 전사처럼 보이지만 연약하고 소심하며 열등감으로 가득하다”며 “오텔로의 아픔과 갈등, 고뇌, 사랑 등 다양한 감정에 맞는 소리와 색깔로 잘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델모나코(1915~1982, 이탈리아 전설적 테너) 등 오텔로를 대표하는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면 어떻게 이런 소리를 내고 표현하는지 놀라게 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방인 오텔로의 말 못할 심정은 오페라 본고장 유럽에서 데뷔 초기 인종 차별을 당한 이용훈에게도 각별하게 와 닿았다.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 데뷔할 때 자기들이 주역을 맡겼으면서도 이탈리아인이 아니라고 첫 2주간은 리허설(연습)에도 참여하지 못하게 하더군요. 혼자 호텔에서 연습했습니다. 유럽인들의 주요 무대에서 동양인으로 데뷔할 때 제가 느낀 감정이 오텔로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예술의전당은 지난해 공연한 ‘노르마’처럼 이번에도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 작품을 그대로 가져온다. 세계적 오페라 연출가 키스 위너가 2017년 초연한 버전이다. 이용훈 외에 테오도르 일린카이(오텔로 역), 소프라노 흐라추이 바센츠·홍주영(데스데모나 역), 바리톤 마르코 브라토냐·니콜로즈 라그빌라바(이아고 역) 등이 출연한다. 오페라 지휘 거장 카를로 리치(64)가 국립심포니를 지휘한다. 리치는 “‘오텔로’는 음표 하나하나가 드라마에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오케스트라가 상당히 중요하다”며 “특히 막이 오르자마자 20분 동안 폭풍처럼 몰아치는 음악은 고속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페라리에 올라탄 기분이 들게 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