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발화 42초 만에 칠흑 같은 어둠으로 돌변한 배터리 창고는 온 국민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불꽃이 튀는가 싶더니 곳곳에서 연쇄 폭발이 이어졌다. 공장 내부가 연기로 가득 차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지옥’을 그대로 드러냈다.
6월24일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의 내부를 담은 폐쇄회로(CC)TV의 한 장면이다. 23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 화재 역시 과실을 둘러싼 인재(人災) 여부를 두고 지난한 법정 다툼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유가족들은 대형 로펌을 선임한 회사 측이 책임 있게 교섭에 임하지 않는다며 길거리로 나섰다. 경찰에는 수사 정보 공유를 요구하고 있다.
앞서 화재 참사 며칠 뒤 화성시청 회의실을 찾은 유가족들을 마주한 적이 있다. 차마 그들의 두 눈을 바라보지는 못했다. 충격과 슬픔, 자신에게 닥친 일이 아니길 바라는 현실 부정의 복잡한 속내를 읽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회의실 밖 복도에선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여성이 우는 아이를 홀로 달래고 있었다.
2020년 4월 경기 이천에서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물류창고 화재 참사 당시 분향소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불과 10년의 세월을 놓고 봐도 마찬가지다.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세월호 참사·판교 환풍구 붕괴·장성 요양병원 화재(2014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2017년), 밀양 세종병원 화재(2018년),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2021년),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2022년), 오송 지하차도 참사(2023년) 등이 연례행사처럼 이어졌다.
사고 때마다 안전 지침이나 법 규정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있었지만 정부의 안전 시스템 구축이 성과를 냈다는 소리는 여태 들어보지 못했다. 참사 패턴이 반복되는 가운데 ‘위험 사각지대’ 역시 걷히지 않고 있다.
‘스위스 치즈 모델’이란 이론이 있다. 영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리즌은 이 모델에서 항공사고의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해, 사고가 어느 한 단계만의 실수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심각하지 않은 여러 사건의 연속적인 결과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1979년 3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 섬에서 발생한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냉각수를 거르는 여과장치에 불순물이 끼어 터빈이 멈췄고, 이런 상황을 대비해 만든 비상 급수 펌프마저 보수 작업 뒤 실수로 닫아놓은 밸브 탓에 작동하지 않았다. 또 밸브가 닫힌 것을 알려야 할 계기판은 우연찮게도 직원이 벗어놓은 옷에 가려 있었다. 초기 대응은 늦어졌고 미국 전역은 한동안 공포에 떨어야 했다.
당시 사회학자들은 이를 인재로 돌리기보다 시스템 자체의 문제로 봤다. 미국에선 5년간 이 사고와 관련된 10권의 책과 100여편의 논문이 쏟아졌다. 안타깝게도 아리셀 참사는 이미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진 듯 보인다. 유가족은 허공에 답답함을 토로하고, 이렇게 또 한 사건이 마무리되면 모든 건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된다. 이쯤 되면 망각이 신의 축복이 맞는지 혹시 죄악은 아닐지 두려워진다. 인생의 매듭은 기억으로 만들어지고, 아무리 아파도 잊어선 안 될 일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