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영어 능통한 필리핀 가사도우미, 역할은 어디까지? [미드나잇 이슈]

필리핀 가사관리사 업무범위 ‘모호성’ 지적 계속
돌봄·가사노동에 더해 영어 교육 기대까지…
“돌봄은 돌봄대로, 영어 교육은 영어 교육대로 강화해야”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이 지난 6일 입국했다. 약 한 달간 한국 적응 교육을 거쳐 다음달 3일부터 서울 시내 가정에서 근무를 시작한다. 고용노동부는 돌봄노동뿐 아니라 가사노동에 ‘영어 교육’까지 가능하다고 강조하는데 이런 포괄적인 업무 범위가 정책적 혜택 대상을 불분명하게 하고 향후 갈등의 소지를 키울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8일 서울시와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서울시와 고용부, 가사관리사 업체는 ‘제3자 운영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다음달부터 시작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면밀히 관리하기 위해 주 1회 정기적으로 만나겠다는 계획이다. 이밖에도 기타 인권 문제나 범죄행위가 발생해도 즉각 가동한다.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이 지난 6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전날 마감된 필리핀 가사관리사를 신청한 서울시내 가구는 751가정이다. 모집인원의 2배가 넘는 가구가 몰렸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6일 입국한 100명이 “영어에 능통”하며 “24∼38세의 젊은 계층”이라고 강조했다.

 

가사노동자협회 대표를 맡았던 최영미 한국노총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은 “필리핀이 원래 젊은층이 취업할 곳이 많지 않아 외국으로 노동자를 보내는 인력사업을 펼쳐 인권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며 “그런데 우리나라까지 젊은 여성임을 강조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돌봄과 가사노동에 더해 영어 교육 기대까지 겹쳐 필리핀 가사노동자 수요가 커졌다는 분석에는 “누구를 위한 정책으로 흐르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최 위원장은 “기본적인 정책의 중심은 돌봄”이라며 “돌봄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한다면 야간에 근무하거나 저소득 맞벌이 부부 등에게 정책의 혜택이 돌아가야 하는데 현재는 돌봄비용이 부담된다는 비판에 영어 교육이 끼어들어 시선을 돌리게 하는 ‘이용자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러면서 “영어능력이 떨어지거나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아이를 위해서는 영어 공교육을 강화해야 올바른 방향”이라며 “돌봄서비스 강화는 지불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도 질 좋은 돌봄노동을 제공하자는 게 기본 취지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리핀 가사관리사에게는 최저임금에 보험료 등 간접비용을 추가해 월 119만원가량(하루 4시간 이용시)이 지급된다. 정부는 비용 관련해 영어와 한국어 소통 능력을 갖춘 데다 한국과 필리핀 양국 정부가 검증한 인력이라고 설명했다.

 

당장 다음달부터 업무에 투입되면 모호한 업무범위가 문제가 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필리핀 정부는 아이 돌봄 관련 업무만 가능하다는 입장인 반면, 고용부는 어른이 먹은 식기 설거지나 바닥·욕실 청소 등 가사노동까지 시킬 수 있다며 차이를 보였다. 최 위원장은 “필리핀도 최근 집안일만 하는 가사노동자, 간병만 하는 요양보호사 등으로 업무 성격을 명확하게 정해 인력을 보냈는데 이번에는 돌봄부터 가사까지 동거가족을 위한 일도 정부는 업무에 다 포함했다”며 “집안일 성격을 하나하나 규정할 수 없어 1∼2년 사이에는 불거지지 않더라도 언젠가 (양국간)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160시간에 걸쳐 한국어, 한국문화를 포함한 각종 교육을 받는다. 최 위원장은 “이 기간 한국문화를 알리는 교육도 매우 중요하지만, 이들이 수시로 상담받을 수 있는 고충처리기구와 보수교육이 특히 필요하다고 본다”며 “개인 간 돌봄비용으로 싸우게 만들지 말고, 정부는 장기적으로 외국인력 여부를 떠나 돌봄노동자 처우를 높이고 돌봄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