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었다, ‘어른’은 없었다…“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는 배드민턴협회와 코치진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안세영이 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안세영은 “협회와도, 소속팀과도 소통하지 못했다”며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연합뉴스

 

배드민턴협회에 ‘어른’은 없었다. 22살 선수의 갑작스러운 폭로에 협회와 코치진은 선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면서까지 자신들을 위한 변명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세계랭킹 1위 선수를 다른 종목 최상위급 선수들과 비교해 ‘그 급은 아니다’라고 깎아내리던 대한배드민턴협회, 일심동체로 안세영의 발언을 반박한 코치진은 ‘방어’에는 일단 성공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선수 보호’에는 관심이 없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어린 선수의 발언을 묵살하려는 그들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이른바 ‘안세영 사태’의 원인을 몸소 증명하고 있다.

 

금메달의 기쁨을 만끽할 여유조차 없었다. 부상관리와 대회 출전 강요 등 협회 방침에 대한 안세영의 불만이 터져나오자 배드민턴협회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김택규(58) 대한배드민턴협회장은 지난 6일 예정보다 앞당겨진 귀국길에서 “보도자료를 만들기 위해 일찍 돌아간다”고 되뇌었다. 이 ‘보도자료’란 다름 아닌 안세영 발언에 대한 반박으로 똘똘 뭉쳐진 것이었다. 공격을 당했으니 반박하는 것이 당연지사랄까. 아직 안세영이 제대로 된 입장을 내놓기도 전이다. 협회 측 대응은 지나칠 정도로 단순하고, 신속하며, 방어적이다. 기본적으로 선수 입장에선 협회에 날을 세워 좋을 것이 없는데도, 안세영은 굳이 금메달을 딴 가장 기쁜 순간에 협회에 대한 불만을 꺼내들었다. 선수가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에 대한 심사숙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코치진의 대응도 ‘어른의 태도’라 보긴 어렵다. ‘송구스럽지만, 안세영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7일 배드민턴 협회를 통해 발표된, ‘사실을 밝힌다’며 서명까지 첨부한 코치들의 입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수정쌤’으로 불린 한수정 트레이너가 그만 둔 것은 계약 만료와 자의 때문이고, 안세영도 한 트레이너에 대한 모종의 불만을 표하며 사임에 동의했다는 것. 그러니까 한 트레이너가 떠나 관리를 받지 못했다는 안세영의 불만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 서명한 코치진 중엔 안세영이 자신의 ‘롤 모델’이라며 존경심을 밝혀온 성지현(33)도 있다. 대회 출전을 통제한 적 없으며, 치료와 재활도 최선을 다했다, 안세영의 입을 막은 적도 없다. 그러니까 자신들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협회와 코치진의 공통된 주장이다.

 

7일 선수단보다 먼저 귀국한 김택규 대한배드민턴협회장이 인천공항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심적으로 가슴이 아프다. 협회가 무슨 잘못을 많이 한 것처럼 보이는데, 보도자료를 보면 이해할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반성은 전혀 없었다. 협회 측의 주된 주장은 ‘한정된 예산 안에서 최선의 지원을 했다’는 것이다. 그토록 공을 들인 ‘보도자료’엔 선수를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 대신 조직의 천편일률적 운영에 대한 옹호만 담겨있다. ‘예산에 맞춰야 한다’는 주장만 있고, 임원들만 비지니스석을 타고 몸이 재산인 선수들은 불편한 이코노미석을 탄다는 논란에 대한 해명은 없다. ‘협회가 모든 걸 막고 있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에 대한 숙고 대신 ‘변명’만 있었다. 부상에 시달리며 세계랭킹 1위를 지키고 있는 안세영이 위협적인 경쟁자인 대만의 타이쯔잉처럼 개인 트레이너를 두는 것이 정말 다른 선수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일까? 이미 세계적 기량을 갖춘 선수가 그에 걸맞은 관리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안세영이 손흥민이나 김연아 급 대우를 바란다’는 협회 측 발언은 그들이 세계 최고의 선수를 관리할 자격이 없음을 드러낸다.

 

폭로의 파장이 각종 스포츠 협회에 대한 성토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안세영은 뒤늦게 ‘싸우려는 게 아니다’, ‘운동에 집중하고 싶다’, ‘다른 선수들에게 미안하다’며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대회를 마칠 때면 아이스크림·치킨이 먹고 싶다던 안세영이 튀김 한 조각 먹지 못하면서 추구한 것이 정말 그 자신만을 위한 ‘특별 대우’였을까. 오랫동안 이어져온 조직의 부조리를 고발한 젊은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조직의 뒷받침 없이 금메달 딸 수 없었다’는 쓴소리 뿐이었을까. 안세영을 보호해야 할 ‘어른’은 다름 아닌 협회와 코치진, 배드민턴계 선배들이다. 배드민턴에 모든 것을 바친 젊은이를 위한 변명은 어디에도 없다. ‘제 이야기를 고민하고 해결해 줄 어른이 있길 빌어본다’는 그의 목소리는 아직까진 안타까운 외침으로 남아있다. 형평성 때문이 아니라 40명이나 되는 임원 월급을 챙기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