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은 제왕적 대통령… 프랑스 정치 제도 바꿔야”

佛 좌파 정치인, 英 가디언 기고문에서 주장
총선 졌어도 올림픽 이유로 총리 임명 안 해
“대통령 권한 축소하고 의회주의 실현해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최근 실시된 하원의원 총선거에서 참패했음에도 새 정부 구성을 하지 않고 시간만 끌자 총선에서 이긴 좌파 진영의 불만이 폭발 직전이다. 이들은 현행 프랑스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하다는 점을 문제 삼으며 개헌 등 정치 제도 개혁을 요구하고 나섰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앵발리드 군사박물관에 도열한 군 의장대를 뒤로 한 채 이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은 좌파 성향의 프랑스 정치인 샤를로트 망비엘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녹색당 공동 의장인 망비엘은 ‘프랑스 대통령의 과도한 권력 : 정치 개혁 필요성 일깨운 마크롱의 오만’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총선 이후 새 정부 구성 요구를 묵살하며 자신이 이끄는 중도 집권당의 재기를 노리는 마크롱을 맹렬히 비판했다.

 

7월 초 치러진 총선에서 좌파 연합 신인민전선(NFP)이 193석으로 1위를 차지했다. 마크롱의 중도 집권당은 164석으로 2위에 그쳤고, 극우 성향 국민연합(RN)이 143석을 얻어 3위로 약진했다. 문제는 하원 전체 577석의 과반(289석 이상)을 확보한 단일 세력이 없다는 점이다. 프랑스 헌법상 행정권은 총리를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있고, 정부는 하원 과반 의원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존속이 불가능하다.

 

다만 헌법은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하는 과정에 하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못박진 않았다. 하원은 일단 임명된 총리를 상대로 불신임권을 행사해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을 뿐이다. 총선 후에도 대통령이 새 총리를 임명하지 않고 기존 총리로 하여금 일상적인 행정 업무를 처리하도록 하면 하원이 불신임안을 통과시키지 않는 한 나라가 그럭저럭 굴러가는 구조다.

 

과반은 아니지만 원내 다수당인 NFP는 앞서 좌파 성향의 루시 카스테트 파리시 재무국장을 새 총리 후보로 결정해 마크롱에게 임명을 촉구했다. 하지만 마크롱은 “올림픽 기간에는 새 총리를 임명하지 않을 것”이라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올림픽 후 이어질 패럴림픽 기간까지 감안하면 9월 초에나 새 총리 임명 절차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때까지는 마크롱의 핵심 측근이자 그가 임명한 가브리엘 아탈 현 총리가 프랑스 정부를 이끈다. 정치 분석가들은 약 1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마크롱이 좌파와 우파의 일부 의원들을 끌어들여 중도 집권당 중심의 새 연합을 결성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중도 집권당의 외연을 확장함으로써 어떻게든 원내 과반을 확보해 정권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 제5공화국의 창시자 샤를 드골 대통령이 군복 차림으로 카퍼레이드를 하는 동안 환영하는 군중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1958년 제정된 5공화국 헌법은 예전과 달리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확대한 점이 특징이다. 게티이미지 제공

망비엘은 마크롱의 이런 처사가 의회민주주의 정신을 짓밟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모든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선 의회에 가장 많은 의석을 가진 정치 세력이 정부를 구성하고 이끄는 게 당연시된다”며 “그럼에도 마크롱은 원내 최다 의석을 지닌 NFP가 새 총리를 배출해야 한다는 점을 고의로 무시함으로써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정치 행태를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마크롱을 향해 “좌파의 총선 승리를 인정하고 당장 카시테트를 총리로 임명해 새 정부를 구성하도록 하라”고 촉구했다.

 

망비엘은 대통령이 하원을 해산할 수 있도록 한 점, 대통령의 총리 임명에 하원 동의가 필요하지 않은 점 등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의 일부 조항을 들어 개헌 등 정치 개혁 필요성도 역설했다. 한마디로 대통령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한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것이다. 그는 “대통령의 권력에 의존하지 않고 의회에 훨씬 더 많은 비중을 부여하는 공화국을 건설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2027년 대선에선 극우파가 승리할 길을 열어주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