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방어선 사수한 미군 병사, 74년 만에 ‘고향 앞으로’

1950년 9월 1일 창녕에서 전사한 래스 상병
실종자 분류됐다가 최근 유해 신원 확인돼
9월 17일 고향 위스콘신州에서 장례식 치러

6·25전쟁 당시 한국에서 싸우다가 실종된 미군 병사가 유해의 신원이 확인됨에 따라 무려 74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 영면에 들 예정이다.

 

10일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에 따르면 하와이주(州) 호놀룰루의 태평양국립묘지(일명 ‘펀치볼’)에 안치된 무명 용사들 유해 중에서 로버트 래스(1928∼1950) 상병과 유전자(DNA)가 일치하는 시신이 발견됐다. 래스 상병은 미 육군 제2보병사단 제23보병연대 소속이었다.

6·25전쟁 도중 전사한 미 육군 로버트 래스(1928∼1950) 상병. 미 국방부 홈페이지

미군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래스 상병은 1928년 11월 스위스계 이민자 부모 사이에 태어났다. 위스콘신주 도지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도지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에 입대했다.

 

1950년 6월25일 한반도에서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래스가 속한 2사단은 한국에 파병됐다. 그해 8월 한국군과 미군 등 유엔군은 낙동강 방어선 안에 갇혀 있었다. 래스 상병은 이 낙동강 방어선 전투가 한창이던 1950년 9월1일 경남 창녕에서 북한군과의 교전 도중 실종됐다. 당시 나이 겨우 21세였다.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북한군이 패주하고 한국군과 미군 등 유엔군이 북진에 나선 뒤 미군은 창녕 일대에서 미군 장병들로 추정되는 유해를 다수 수습했다. 하지만 당시는 DNA 분석 기술이 워낙 일천해 신원 확인은 매우 어려웠다.

 

미 육군은 종전협정 체결 이후인 1953년 12월31일 “래스 상병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이어 1956년 1월16일에는 고인의 유해 수습은 불가능하다고 최종 판단했다.

 

하지만 이후 수십년간 DNA 분석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함에 따라 하와이 펀치볼로 옮겨진 무명 용사들의 신원을 가려내는 작업에서도 성과가 나타났다. DPAA 연구소는 올해 3월 말 래스 상병의 신원을 확인해 유족에게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고인의 여동생이 생존해 있으며 조카들도 위스콘신주 여러 마을에 흩어져 살고 있다고 한다.

 

DPAA는 오는 9월17일 래스 상병의 고향인 도지빌의 성(聖) 요셉 가톨릭 교회에서 유족과 지역 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 미사가 열린다고 밝혔다. 이후 고인은 군 의장대가 주관하는 엄숙한 의식을 치른 뒤 성 요셉 공동묘지에서 영원한 안식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