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로 ‘숨 막히는 발작’…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 [건강+]

신용욱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갑자기 극도의 두려움 느끼는 불안 장애
신규 진단 환자 17년 전보다 9.4배 급증
연예인 등 솔직한 투병기 공개에 힘입어
치료받지 않던 사람들 병원 방문 늘어나
증상 가셔도 최소 1년 약물 복용 바람직

“사실 현미경의 발견, X-레이 발명 등 진단 도구가 획기적으로 달라지거나 전염병이 창궐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특정 질환 유병률이 몇 배씩 변화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국내 공황장애가 십수 년 사이 급증한 것이 환자가 늘었다기보다는 그동안 치료받지 않던 사람들의 병원 방문이 늘어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전체 소득이 올라가면 정신건강의학 관련 의료서비스의 수요도 증가합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하기도 하고, 더 치열하게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더 많아진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신용욱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9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국내에서 공황장애 환자가 급증한 원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신 교수 연구팀이 최근 ‘자마 네트워크 오픈(JAMA Network Open)’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공황장애를 새롭게 진단받은 환자(신규 진단율)가 2004∼2010년 연평균 10만명당 65명에서 꾸준히 증가해 2021년에는 10만명당 610명을 기록했다. 17년 전보다 약 9.4배 증가한 수치다. 단순히 병원 방문 환자 수만 보더라도 12년 새 5만여명에서 22만여명으로 4배 이상 늘었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신용욱 교수는 9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연예인이나 미디어 노출이 많은 사람이 공황장애가 많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라며 “오히려 번아웃 직장인이 많다. 내성적이고 완벽주의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더 잘 걸린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공황장애가 있다고 생업을 놓고 살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더 가열차게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을 것을 조언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전 세계에서 기존에 보고된 일 년 유병률은 0.1%(나이지리아)에서 6.9%(이탈리아) 정도입니다. 아시아 국가에서 대체로 낮고, 서구 국가에서 높게 나옵니다. 아시아 중에서도 특히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등 유교권 국가에서 낮게 나타났습니다.”



신 교수는 차태현 등 “용기 있는 연예인이 정신질환에 대해 솔직하고 진솔한 투병기를 공개하면서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병원을 찾지 않던 환자들이 도움받을 용기를 내게 됐다”고 지적했다.

공황장애는 갑자기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는 불안 장애의 일종이다. 인간의 뇌는 외부 위협에 반응해 불안과 두려움, 가슴 두근거림과 어지럼증, 홍조 또는 한기, 숨 막힘, 떨림, 메슥거림 등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공황장애 환자는 외부 위협이 없는 상태에도 이런 공황발작이 수시로 발생한다. ‘경보기’의 오작동인 셈이다. 발작 지속 시간은 대략 5∼10분으로, 30분을 넘기지는 않는다. 발작 간격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는 심각한 경우도 있고, 3개월 정도로 뜸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

 

원인은 아직 확실치 않다. 최근 다양한 질병에서 연구 중인 ‘유전’과 관련해서도, 공황장애는 유방암의 BRACA처럼 원인 유전자로 지목되는 것이 없다. 다만 생물학·심리학적으로 다양한 ‘이론’만 존재한다.

“생물학적 이론의 경우는 공황장애 환자는 우리가 숨을 쉬면 유지되는 혈중 적정 농도의 산소·이산화탄소 비율에서 이산화탄소 농도에 대한 역치가 너무 낮아서 쉽게 질식감이 유발된다는 것이죠. 심리학적으로는 부모가 공황장애를 가지고 있을 때 이를 보고 배운다(학습이론), 트라우마를 포함한 스트레스 반응 등이 있습니다.”

많은 정신과 질환과 마찬가지로 공황장애 역시 다른 정신질환과 중첩된다.

신 교수는 “공황장애의 경우 절반 정도는 광장공포증, 우울증, 강박증 등의 증상을 보인다”며 “다만 조현병·조울증이 동반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설명했다.

치료는 항불안제와 항우울제 등 약물치료와 인지행동 요법이 병행된다. 신 교수는 “완치에 대해서 정확하게 보고된 연구는 없다”며 “다만 개인적으로 완치율은 20∼40% 정도로 보고 있다. 약물을 충분히 사용하지 않고 조기에 끊었을 때는 50% 정도가 재발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공황 발작이 사라져도 치료는 최소 1년 정도 유지하고 평균적으로 4∼5년 정도 약을 먹는다. 1년 정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보통 약물 복용을 하지 않는다.

공황장애 진단은 면담을 통해 이뤄진다. 피검사, X-레이, CT 등 검사는 관상 동맥 질환, 갑상선 기능 이상, 부갑상선 기능 이상, 간질, 갈색종, 저혈당증, 심실상성 빈맥 등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는 내과적 질환을 배제하기 위함이다.

일부에서는 “요즘 애들이 살기 편해서 그렇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등 ‘꾀병’으로 치부하는 목소리도 있다.

신 교수는 “증상이 워낙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어 환자가 마음먹고 연기를 한다면 구별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공황장애 환자를 많이 보면 그 증상의 특징이 느껴지고 표현하는 증상이 연기인 경우는 어색하게 느껴질 수는 있다. 공황발작 시에 경험하는 공포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할 정도로 심하기 때문에 증상을 꾀병이나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선을 그었다.

“환자 중 한 분은 아이 교육에도, 본업과 부업에도 모든 것을 다 무리해서 잘하려고 노력을 하다가 번아웃과 함께 공황장애가 왔습니다. 말 그대로 ‘숨 막히는’ 상황이 온 것이죠. 그런 분들이 상담하면 ‘내가 그동안 너무 힘들게 살았다’며 눈물을 흘리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지금처럼 똑같이 바쁘고 정신없이 사시라고 이 약을 드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본인의 세상을 보는 가치관 현재의 생활이나 대인관계를 돌아보고, 무엇이 정말 소중한 것인지를 찾고, 그 외의 것들은 조금 덜어내고 내려놓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