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태권도는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은메달 1개와 동메달 2개로 ‘노 골드’에 그치는 굴욕을 맛보며 종주국의 자존심을 구겼다.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사상 처음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두 번의 아픔은 없었다. 한국 태권도는 2024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휩쓸며 종주국의 위상을 되찾았다. 선봉장으로 나선 ‘막내’ 남자 58㎏급 박태준(20·경희대)의 금빛 발차기에 이어 여자 57㎏급 김유진(24·울산시체육회)의 깜짝 금메달과 ‘베테랑’ 이다빈(28·서울시청·여자 67㎏초과급)의 불굴의 동메달 추가까지 겹경사를 누렸다.
금맥이 끊겼던 한국 태권도에 부활포를 쏜 건 박태준이었다. 남자 태권도의 ‘간판’ 장준(한국가스공사)을 꺾고 파리행 티켓을 얻은 그는 생애 첫 올림픽 무대서 과감하고 공격적인 태권도로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남자 58㎏급에서 금메달 사냥에 성공했다.
기대주에 불과했던 세계 24위의 김유진은 파죽지세의 기세로 금메달을 수확하는 반전 드라마를 썼다. 김유진은 지난 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그랑팔레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태권도 여자 57㎏급 결승전에서 나히드 키야니찬데(이란)를 2-0(5-1 9-0)으로 꺾었다.16년 만에 이 체급 금메달이다. .
하위 랭커인 김유진은 세계적인 선수들을 하나씩 제압하는 ‘도장 깨기’로 시상대 정상에 섰다. 16강전에서 세계 5위 하티제 일귄(튀르키예)을 2-0으로, 8강전에서는 4위 스카일라 박(캐나다)을 2-0으로 완파했고, 준결승전에선 1위 뤄쭝스(중국)까지 2-1로 꺾었다. 결승 무대에서 만난 키야니찬데는 2위였다. 김유진은 금메달을 따낸 뒤 “세계랭킹은 숫자에 불과하다. 나 자신만 무너지지 말자고 생각했다”고 당차게 말했다.
한국 태권도 ‘마지막 주자’로 나선 이다빈은 귀중한 동메달을 따냈다. 이다빈은 10일 태권도 여자 67㎏초과급 동메달결정전에서 로레나 브란들(독일)을 2-1로 꺾었다. 이다빈은 도쿄 대회 은메달에 이어 2회 연속 올림픽 메달을 거머쥐면서 한국 태권도의 파리 대회 네 번째 ‘멀티 메달리스트’로 등극했다. 이다빈은 경기 종료 뒤 “도쿄 올림픽 때는 마지막에 지고 대회가 끝났는데, 이번에는 동메달이지만 그래도 이기고 끝나서 그런지 기분이 정말 좋다”며 “올림픽에 두 번 출전하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다. 그렇게 힘들게 나선 세계인의 축제에서 메달을 두 번이나 딸 수 있었다는 게 뜻깊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창건 태권도 국가대표팀 감독은 “도쿄 올림픽 때 성적이 부진해서 심리적으로 힘들었다. 잠도 잘 못 잤는데 이번에 활약한 선수들이 고맙다”고 기뻐했다. 또한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 대해선 “젊은 선수들이 더 잘 준비해야 한다. 자만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