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동안 달려온 지하철 1호선에는 서민의 삶과 애환 녹아 있다. 당연히 예술가들이 이곳을 지나칠 리 없다. 다양한 장르의 문화 콘텐츠들이 반세기 지하철에 동승했다.
그중에서도 대표 문화 콘텐츠는 얼마 전 작고한 김민기 대표가 이끌던 학전소극장의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다. 1994년부터 29년 동안 4000여회 공연되며 73만명 관객을 싣고 달리다 30주년을 코앞에 둔 지난해 12월31일 학전의 경영난과 함께 멈춰 섰다. 배우 설경구, 황정민, 김윤석, 장현성, 조승우, 이정은, 가수 윤도현, 나윤선 등 많은 스타를 배출한 소극장 뮤지컬의 전설이다.
연변 출신 여성 선녀가 결혼을 약속한 제비를 찾아 서울을 헤매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독일 원작을 김민기가 한국 정서에 맞게 번안하고 각색했다. “뒤차를 타네. 또 밀려났고 기다려야만 하네”, “산다는 게 참 좋구나. 아가야. 내 맥박은 뛰고. 혼백도 살아”라는 극 중 노래 가사처럼 하층민들의 삶을 통해 온기 잃은 한국 사회 자화상을 아프게 헤집는다.
1990년대 지하철 1호선 진풍경 중 하나는 ‘푸시맨’의 존재였다. 출근 시간 숨쉬기 힘들 정도로 가득 찬 전차 안에 사람들을 꾹꾹 밀어넣는 푸시맨과 주변 풍경을 박민규 작가의 단편소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에서 우화적으로 그린다. 박 작가는 “열차라기보다는, 공포스러울 정도의 거대한 동물이 파아, 하아, 플랫폼에 기어와 마치 구토물을 쏟아내듯 옆구리를 찢고 사람들을 토해냈다”고 당시 ‘지옥철’을 묘사했다.
대중가요와 드라마, 만화 등도 지하철 1호선을 소재에서 빼놓지 않았다. 가요 중에서는 그룹 동물원의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1990년)가 가장 대중적이다. 옛 인연과 우연한 재회가 주는 아련함을 묘사하며 대도시 지하철이 만남과 엇갈림의 공간임을 보여준다.
신설동역 지하 3층에 있는 일명 ‘유령 승강장’은 영상 촬영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과거 5호선 환승 구간으로 1974년에 미리 지어놓았으나 계획 변경으로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 됐고 이제는 많은 뮤직비디오나 드라마 촬영지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그룹 트와이스의 ‘치얼 업’, 엑소의 ‘라이트세이버’ 등 뮤직비디오와 넷플릭스 드라마 ‘경성크리처’, KBS ‘아이리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웹툰 ‘1호선’(글·그림 이은재)은 사람들이 좀비가 된 세상에서 주인공이 여자친구를 찾기 위해 독산역에서 망월사역까지 이동하는 내용이다. 만화책으로는 ‘지하철 1호선’(글·그림 조명훈)과 ‘사람의 곳으로부터(글·그림 김수박)’ 등이 1호선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다룬다.
최근에는 지하철 1호선 노선 확장과 더불어 역사(驛舍)와 주변이 문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동두천 보산역 교각들은 형형색색의 거리예술(그라피티)로 화려한 옷을 입었다. 경기도미술관과 동두천시가 ‘동두천 K록(Rock) 빌리지 조성사업’의 하나로 꾸민 것이다. 한국,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러시아, 태국 등에서 18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역을 나오면 찾기도 쉽고, 사진 찍기도 좋다.
또한 지하철 1호선을 지역 문화의 연결 통로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서울 영등포, 경기 부천, 인천 부평 등 1호선이 지나는 지역 문화재단들이 모여 2021년 시작해 수원, 의정부까지 확대된 ‘문화 1호선’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