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파트 전기차 갈등 심화, 배터리 공포 잠재울 종합대책 시급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12일 서울의 한 아파트에 '전기자동차는 지상주차장으로'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있다. 2024.08.12. jhope@newsis.com

인천 아파트 지하주차장 화재에서 촉발한 전기차 공포가 급속히 번지고 있다. 일부 아파트에서는 지하주차장에 전기차 출입을 금지하거나 출입하더라도 ‘불이 나면 책임진다’는 각서까지 요구해 주민 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전기차 구매 취소가 꼬리를 물고 중고차시장에서도 전기차 매물이 쏟아진다. 이러다 미래첨단산업인 전기차·배터리가 애물단지로 전락해 고사위기에 처하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다급해진 현대차는 그제 전기차 13개 차종의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했고 기아차도 뒤를 이었다. 하지만 BMW를 뺀 수입차 업체들은 여전히 영업비밀을 이유로 비공개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배터리 제조사 정보는 소비자 안전과 알 권리 보장 차원에서 공개하는 게 옳다. 중국은 2018년부터 공개하고 있고 유럽과 미국 일부 주에서도 향후 2∼3년 내 법적으로 공개가 의무화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도 배터리 제조사나 원산지를 숨기는 것은 소비자를 오도하는 불공정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전기차 제조사는 관련 정보 공개가 안전뿐 아니라 제품 경쟁력과 기술발전에도 도움이 되는 만큼 전향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어제 전기차화재 관련 긴급회의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오늘도 국무조정실 주재로 회의가 예정돼 있지만, 종합대책은 다음 달에나 나온다고 한다. 한가하고 안일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전기차화재가 해마다 늘고 있는데도 아직 명확한 안전기준조차 없는 실정이다. 지난해 6월에도 전기차 안전대책이 나온 바 있지만, 화재예방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전기차 공포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열 폭주 화재위험을 최소화하는 게 급선무다. 전기차는 배터리에 불이 붙으면 삽시간에 온도가 800∼1000도까지 치솟아 진압이 어렵다. 배터리 충전을 90% 이하로 제한하고 전용 소방시설 확충과 같은 비상대응책이 필요하다. 소화 덮개나 소화 수조와 같은 진압 장비를 서둘러 개발, 보급하고 주차공간의 지상화, 격리방화벽 설치 등도 검토해야 한다. 그렇다고 과잉대응으로 전기차 공포를 조장해서도, 전기차와 배터리산업의 발전을 가로막아서도 안 될 일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전기차 전환은 가야 할 길이다.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합리적인 중장기대책을 짜야 한다. 정부와 전기차업계, 과학기술계 모두 머리를 맞대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