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전 문명 텍스트로 담아낸 헤이안 시대 일본인의 삶

‘겐지 모노가타리’ 완역 이미숙 박사

첫사랑 대신할 여성 찾는 남자 이야기
과부가 된 필자, 궁중 나인이 된 후 집필
삶과 사랑, 권력·종교·죽음 모두 담아내

10세기에 쓰인 긴 원문 문장·와카 난해
12년 걸친 충실한 번역으로 4권 집필
2027년까지 5·6권 모두 출간하고 싶어

학자 출신의 아버지를 따라서 임지에서 교토로 귀경해 결혼한 남자는 아버지 나이뻘이었다. 40대 중반의 나이로,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교토 근방의 지방관이었다. 서기 998년, 이십 대 후반의 그녀는 전처와의 사이에 이미 몇 명의 자식을 둔 남자와 만혼을 했다.

결혼 생활은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짧았다. 결혼 이듬해에 딸을 낳았지만, 결혼 3년 만인 1001년 남편은 역병으로 저세상으로 떠났다. 남편과의 사별은 그녀의 가슴에 깊은 슬픔과 끝을 알 수 없는 외로움의 비수를 꽂았다.

 

헤이안 시대 일본 귀족사회를 그린 무라사키시키부의 장편소설 ‘겐지 모노가타리’의 정편이 전문 연구자 이미숙 박사에 의해 저본의 원문 중심으로 완역돼 화제가 되고 있다. 최상수 기자

“나는 우울하고 혼란스러웠다. 몇 년 동안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살아왔다.” 당시의 심정을 그녀는 ‘무라사키시키부 일기’에 적었다. “시간의 흐름을 기록하는 일보다는 조금 더 무언가를 하면서? 계속되는 외로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한문 서적을 편하게 읽을 정도의 교양과 정형시 와카를 창작할 수 있는 문재가 있었다. 헤이안 시대 유력 가문인 후지와라 가문의 지손(支孫)인 후지와라 다메토키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남자 동기가 아버지로부터 한문 서적을 배울 때 옆에서 곁눈으로 익힐 수 있었다.

게다가 이미 10세기에 가나가 보급됐고, 일본 최초의 여성 산문문학 ‘가게로 일기’를 비롯해 적지 않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글로 표현하고 있었다. 과부가 된 그녀는 가나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겐지 모노가타리’ 전문 연구자이자 번역가인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객원연구원 이미숙 박사는 스스로에게 묻듯 설명했다.

 

“상당한 수준의 교양과 정형시 와카를 능숙하게 창작할 정도로 문재가 있고, 짧은 결혼 생활 끝에 남편을 잃은 여성이라면 글을 쓸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글을 씀으로써 자기 삶을 온전히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요.”

 

소설 ‘겐지 모노가타리’의 초기 형태 또는 소설 앞부분이 귀족사회에 퍼지고 읽히면서 큰 히트를 쳤다. ‘무라사키시키부’라는 필명의 작가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일본 귀족사회에서 문재를 인정받은 그녀는 1005년경 당시 실력자 후지와라 미치나가에게 초빙돼 그의 딸이자 이치조 덴노의 중궁 쇼시에게 출사했다. 그녀는 궁중 나인으로 일하면서 소설을 계속 써나갔다. 자연스럽게 궁정 이야기가 풍부하게 녹아들어 가게 됐다.

주인공 히카루겐지를 통해서 삶과 사랑, 권력 투쟁, 정치적 영광과 몰락, 종교에의 귀의 등 10세기 헤이안 시대 일본 귀족사회를 그린 무라사키시키부의 장편소설 ‘겐지 모노가타리’의 정편(1~4권)이 전문 연구자 이미숙 박사에 의해 완역됐다.

이번 고대 가나 원문 완역은 한국연구재단 인문한국(HK)지원사업과 명저번역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2012년부터 12년간이 소요된 노고의 결과다. 소명출판 측은 현대어 중역이 아니라 “저본의 원문에 입각해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히카루겐지는 둘째 황자로 태어났지만 궁중 암투에 희생될 것을 우려한 아버지 기리쓰보 덴노에 의해 신하의 신분이 돼 겐지라는 성을 하사받는다. 그는 좌대신의 딸 아오이노우에와 결혼하지만, 죽은 엄마와 닮은 의붓어머니 후지쓰보 중궁에게 친밀감을 느끼다가 연모한 끝에 밀통해 아들까지 낳는다. 또 교토 북쪽의 산으로 요양을 갔다가 첫사랑 후지쓰보 중궁과 닮은 그녀의 조카 무라사키노우에를 데려와 양육한 뒤 결혼하는 등 여러 계층의 여성들과 관계를 맺는다.

 

여러 곳을 떠돌며 시련을 겪었던 히카루겐지는 이복형인 스자쿠가 덴노를 양위하고 친자식 레이제이가 계승하면서 승승장구를 거듭한 끝에 권력의 정점에 이른다. 하지만 상황이 된 이복형 스자쿠의 부탁으로 스자쿠의 셋째 딸 온나산노미야를 아내로 맞아들이게 되면서, 무라사키노우에는 깊은 슬픔과 상실감에 빠진다.

“이제는 무슨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라고만 생각하며 내 처지에 자부심을 지니고 무심한 마음으로 살아온 세월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겠구나 싶어 그 일이 심중에서는 계속 생각나시지만, 참으로 느긋하게만 처신하고 계신다.”(4권, 50쪽)

무라사키노우에는 결국 슬픔과 상실감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난다. 히카루겐지는 그녀가 죽자 욕망으로 가득 찼던 자신의 삶과 먼저 떠난 무라사키노우에에 대한 그리움을 곱씹으며 인생의 무상을 절감하고 출가를 준비하게 된다.

“- 이 세상이 허무하고 슬프다는 것을 알려 주려고 부처 등이 마련해 두신 신세일 듯하구나. 그것을 억지로 모른 체하며 살았기에 이렇게 죽을 날이 가까운 말년의 황혼녘에 가슴 저미는 끝을 보았으니, 내 숙명의 정도도 내 마음속 한계도 남김없이 다 보아 마음이 편안하여 이제 약간의 굴레도 남지 않았구나.”(4권, 501쪽)

무라사키시키부가 소설 ‘겐지 모노가타리’에서 그린 천 년 전 일본인들의 삶과 사랑, 갈등과 권력투쟁, 죽음과 종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전문 연구자이자 번역가 이미숙은 왜 고대 가나 원문을 바탕으로 번역해야 했을까. 앞으로 속편 5권과 6권도 완역 출간을 준비 중인 이 박사를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무라사키시키부는 당시 궁중 나인이었는데, 어떻게 소설을 쓰는 게 가능했을까.

“궁중 나인이라고 하면, 대장금처럼 잡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들은 마치 살롱과 같은 덴노의 비들 처소에서 와카를 짓거나 일기나 수필, 모노가타리를 쓰는 등 문화 확산의 역할을 했다. 헤이안 시대에는 나인들의 글쓰기가 장려됐다. 살롱에서 문재 있는 나인이 글을 쓰고 인기를 끄는 것은 해당 살롱을 빛내는 일이었다.”

 

―‘겐지 모노가타리’의 문학사적 의미는.

“작품은 첫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랑을 찾아 헤매는 남자들의 이야기다. 천 년 전 일본인들의 삶과 내면이 잘 그려져 있고, 동아시아 문명 교류를 볼 수 있는 문명 텍스트이기도 하다. 특히 이들 남성과 관계를 맺는 여성들의 내면이 아주 많이, 구체적으로 기술돼 있다.”

―번역 주해 과정에서 제일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는가.

“원문 문장이 너무 길고, 와카와 지문이 섞여 있어서 원문 그대로 번역할 수 없고 적절히 분절해야 했다. 원문 중시와 가독성 사이에 균형을 찾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 선행 와카를 알아야 했기 때문에 와카 부문도 쉽지 않았다.”

1964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이미숙은 일본 도호쿠대 문학연구과에서 ‘겐지 모노가타리’를 전공으로 차례로 석·박사 학위 논문을 받았다. 이후 일본에서 ‘겐지 모노가타리’ 연구서를, 한국에선 ‘가게로 일기’ 연구서를 출간했다. ‘가게로 일기’, ‘겐지 모노가타리’(1~4권) 등을 번역했다. 일본 해석학회상 등을 수상했다.

―전문 연구자 또는 번역가로서의 비전은 어떠한가.

“일단은 ‘겐지 모노가타리’ 주해의 완결이 가장 중요하다. 늦어도 2027년까지는 5, 6권을 모두 출간하고 싶다. 저작권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한 출판사에서 전체 개정판을 내고 싶다. 다음으로 ‘겐지 모노가타리’에 관한 단행본을 한 권 쓰고 싶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번역을 하고, 오전 8시엔 어머니 집으로 가서 간병한다. 오전 11시 집으로 돌아와서 일을 한 뒤, 오후 6시부터 다시 어머니 간병. 밤 9시에 돌아와 한 시간 뒤 취침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6시간. 최근 그의 일상은 번역과 어머니 간병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특히 번역과 어머니 간병을 위해 2021년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 직도 그만뒀다.

위안은 의외로 작은 데서 봉긋봉긋 피어난다. 주말에 한 번씩 아차산에 올라서 바위산과 소나무 사이를 걷다 보면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어떤 행복감이 차오른다. 일하다가 지겨우면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처음 1년은 힘들었다. 어느 순간 노고야말로 힘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저마다 져야 하는 운명 또는 우연의 십자가. 힘듦과 괴로움이 될 수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힘 아닐까. 천 년 전 헤이안 시대를 헤쳐간 무라사키노우에처럼.

“- 의지할 데 없는 저에게는 분에 넘친 것이라고 남들은 평가하겠지만, 마음속에 견딜 수 없는 한탄만이 떠나지 않고 있으니, 그것은 저 자신을 위한 기도였습니다.”(4권, 1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