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검사 탄핵’ 청문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의 ‘김건희 살인자’ 발언을 두고 여야가 정면 충돌했다. 이날 회의는 검사 탄핵과 관련한 핵심 증인이 대부분 불참한 가운데 여야 의원들이 공방만 벌이는 ‘맹탕 청문회’ 모양새로 흘러갔다. 그러던 도중 회의에서 최근 국민권익위원회 간부 사망 사건이 거론되면서 여야 의원들의 신경전은 점차 고조됐다. 특히 권익위 간부 사망이 권익위의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 종결 처리와 관련됐다는 전 의원 주장에 여당이 반발하면서 청문회장은 순간 아수라장이 됐다. 전 의원은 문재인 정부 말기부터 윤석열 정부 초기까지 권익위원장을 지냈다.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은 전 의원을 향해 “(당신 때문에) 그분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나. 본인은 그분의 죽음에 죄가 없느냐.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하자 민주당 장경태 의원은 “김건희 때문에 사람이 죽지 않았느냐. 300만원(짜리 명품백)때문에 사람이 죽었다”고 응수했다.
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송 의원을 향해 “부끄럽다. 김건희한테 그렇게 딸랑딸랑해도 사무총장도 못 하더니만 기본적 양심은 있어야지”라고도 했다. 이윽고 전 의원이 “김건희, 윤석열이 죽인 것이다. 살인자다”라고 소리치면서 여당 의원들이 거세게 반발하며 대치는 극에 달했다. 위원장 제지에도 여야 의원들은 마이크가 꺼진 상태에서 한동안 서로 삿대질하며 고성을 질렀고, 청문회는 15분간 정회했다. 이후 여당 법사위원들은 국회 기자회견에서 전 의원을 규탄하는 한편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또 국민의힘 소속 의원 108명 전원 명의로 전 의원에 대한 제명 촉구 결의안을 제출했다. 대통령실도 “패륜적 망언”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면책특권 뒤에 숨어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영부인에게 이성을 상실한 패륜적 망언을 퍼부었다”고 지적했다.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도 이와 관련해 브리핑을 열고 “공직사회를 압박해 결과적으로 고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민주당”이라며 “공직자의 안타까운 죽음마저 정치공세에 활용하는 야당의 저열한 행태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 전 의원은 입장문을 통해 “정권의 안위를 지키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라며 “김건희를 지키기 위해 전현희를 죽이겠다고 나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강유정 원내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대통령실이 공직사회를 압박해 권익위 공무원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민주당이라고 덮어 씌었다”면서 “대통령실이 고인의 죽음에 책임을 느껴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사실관계를 왜곡해 진실 규명을 방해한다”고 엄호했다.
제22대 국회에서 열린 입법·현안 청문회 횟수가 14일 기준으로 총 10회를 기록했다. 국회 회의록에 입법·현안 청문회 내용이 기록된 16대 국회 이후 역대 최다다.
22대 국회 개원 불과 70여일 만에 청문회 횟수가 두 자릿수를 기록한 셈이다. 직전 21대 국회 4년 동안 열린 청문회는 5회였다.
이는 거야(巨野) 더불어민주당이 ‘일하는 국회’를 표방하면서 바꿔놓은 풍경이다. 이런 ‘청문회의 일상화’를 놓고 대개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평이 쏟아진다. 특히 이런 비판이 겨냥하는 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다. 특검·검사탄핵·공영방송 이사 선임 등 ‘지뢰밭’인 이들 상임위에서 야당 주도로 사실상 ‘정쟁용 청문회’가 남발되고 있단 것이다.
다만 일부 다른 상임위원회에서는 실제 민생 현안을 겨냥한 청문회도 진행했거나 추진 중이다. 당장 환경노동위원회·국토교통위원회가 최근 잇따르는 쿠팡 과로사 문제를 따져보기 위한 연석 청문회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한 국회 관계자는 “잦은 청문회가 맹탕·정쟁 유발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하지만 일부 상임위에선 나름 ‘민생 국회’ 취지에 부합하는 식으로 운용되고 있다”며 “양면성이 있다”고 평했다.
국회 회의록 자료 등을 살펴보면 이날 법사위의 ‘김영철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 탄핵소추사건 청문회’와 과방위의 ‘방송장악 관련 2차 청문회’를 더해 22대 국회 중 열린 입법·현안 청문회는 총 10회가 됐다. 16대 국회 이후 22대 국회 이전까지 청문회가 가장 많이 열린 국회는 18대(6회)였다. 민주당은 개원 이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6월21일 법사위에서 ‘채상병 특검법’, 과방위에서 방통위법 개정안에 대한 청문회를 열면서 정국 포문을 열었다. 이후 전세사기 피해·의료계 비상상황·‘노란봉투법’·‘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 요청’ 청원(1·2차) 청문회·‘방송장악 1차 청문회’ 등을 연달아 진행했다. 이미 예고한 청문회도 여럿인 터라 금세 청문회 개최 횟수는 20회를 향해 갈 예정이다.
이날 과방위 ‘방송장악’ 청문회에선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과 김태규 방통위원장 직무대행 겸 부위원장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그러나 이 위원장과 김 직무대행은 각각 탄핵소추 중이란 점과 자신에게 권한이 없다는 논리로 증언을 거부했고, 야당은 김 직무대행을 ‘정당한 이유 없이 증언을 거부했다’며 고발을 의결했다. 이날도 쟁점은 ‘2인 체제’에서 의결된 이사 선임의 적절성이었다. 야당 위원과 이 위원장·김 직무대행 간에 논쟁이 오가던 중에 날선 발언이 여럿 오갔다. 야당 간사인 민주당 김현 의원은 “직무와 관련돼 답변할 수 없다”는 이 위원장을 향해 “그것을 우리가 무능하고 무식하다고 얘기하는 것”이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야당 위원 지적에 반박하던 중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몇몇 동물들은 더 평등하다는 말을 더 떠올리게 된다”며 ‘동물농장’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여기가 동물농장입니까”라며 “말할 때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또 민주당 의원들은 김 직무대행에게 “건방떨지 말라” “팔짱끼고 웃지 말라” “얼굴을 비비지 말라”며 태도를 지적했고, 김 직무대행은 행동 규칙을 주면 거기에 맞춰서 하겠다고 응수하며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쿠팡 과로사 등 ‘민생 청문회’도 추진
이런 청문회와 달리 비교적 정쟁 성격이 옅은 청문회도 가동되는 중이다. 당장 환노위·국토위는 조만간 쿠팡 과로사 문제 관련 연석 청문회 일정 조율에 들어갈 예정이다. 당사자인 쿠팡은 물론 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 등 대상으로 사망 원인을 따지는 동시에 관련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쿠팡이 최근 택배물품 분류 전담 인력 완전 직고용 체제 전환, 택배기사 휴무 확대 등 대책을 내놓은 터라 그 이행 계획에 대한 점검도 진행할 예정이다.
환노위 야당 간사인 김주영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쿠팡 과로사 문제에 대한 연석 청문회를 국토위와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며 “곧 일정 조율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쿠팡 과로사 연석 청문회 추진 논의는 환노위 측 제안에 시작됐다고 한다. 환노위 관계자는 “쿠팡 과로사 문제 관련해서 노동부 쪽에 얘기해도 진상 규명이나 대책 마련에 한계가 있고 물류 인허가권을 지닌 국토부가 청문회에 들어와야 한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전했다.
쿠팡 과로사 연석 청문회가 진행될 경우 22대 국회 들어 두 번째 연석 청문회다. 16일 의대 정원 증원 결정 과정 등을 살펴보기 위한 교육위·복지위의 ‘의과대학 교육 점검 연석 청문회’가 예정된 터다. 40개 의대 학장들의 단체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는 이 청문회를 이틀 앞둔 이날 “의대생이 학업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전환점이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야 합의안 처리가 임박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의 경우 올 6월 말 이미 진행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대책 관련 청문회’를 열어 여야 간 입장 차를 좁히는 데 덕을 본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