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에 밀려 멸종위기… 디지털로 무장, 진화하는 책 [S스토리-‘출판 빙하기’ 업계 생존 분투기]

휘청이는 출판업계
유튜브·웹툰 소비 늘며 독서인구 급감
출판사·서점 영업익 1년 새 42%나 ‘뚝’
신간 부수 5년 만에 1억부 → 7021만부
반세기 역사 ‘문학사상’ 경영난에 매각
학술전문 ‘한울’ 고집 꺾고 문학 진출

구조적 변화 몸부림
주문량에 맞춰 인쇄 ‘無재고 출판’ 시도
MZ 겨냥 오디오북·전자책 동시 출간
민음사·창비 등 유튜브 채널 통해 소통
서점들은 창작 플랫폼 운영 작가 발굴
“정부, 독서 활성화 제도적 지원 확대를”

최근 국내 유수의 월간 문학잡지 ‘문학사상’이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만든 우정문고에, 잡지사가 제정 운영해오던 이상문학상이 다산콘텐츠그룹에 각각 인수돼, 출판가에 작지 않은 충격을 줬다. 1972년 창간된 문학사상은 고 이어령 초대 주간의 기획과 역량 있는 작가 발굴 등을 통해 한국문학의 든든한 지지 기반이 됐고, 문학사상이 1977년 제정한 이상문학상 역시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문학사상의 경우처럼, 출판사와 서점 등 국내 출판가의 불황이 ‘출판 빙하기’라고 불릴 정도로 커지고 심화하고 있다. 더구나 지금의 ‘출판 빙하기’는 일시적 수익 감소 현상을 넘어서 디지털 전환과 영상 매체의 부상, 독서 인구의 감소 등과 맞물리면서 구조적이고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출판 영역의 파괴, 기획 및 편집의 혁신, 영상독자와 소통 강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반 출생) 잡기, 유통의 혁신…. 출판 빙하기를 넘어서기 위해서 출판사와 서점들은 다양한 방향과 방식으로 변화와 혁신을 무더위보다 더 뜨겁게 모색하고 있다.

전문가들과 현장 책임자들은 역사적인 출판 빙하기를 넘어서기 위해선 업계 스스로 사태를 근원적이고 거시적으로 인식하고 구조적이고 생태적으로 접근하라고 주문하는 한편, 정부에 대해서도 좀 더 적극적이고 다양한 지원 정책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학술출판 경영난 가중… 신간 발행 줄어

최근 국내 출판시장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주요 출판사와 서점들의 영업이익은 급격히 줄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출협)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의 공시를 바탕으로 작성한 ‘2023년 출판시장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주요 출판사와 온·오프라인 서점 등 77개사의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은 1136억원으로, 2022년(약 837억원)보다 무려 42.4%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출협이 지난 3년간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한 종수가 3종 이상인 293개 출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2023년 출판시장 통계2’에 따르면, 267개 출판사의 지난해 평균 영업이익은 9200만원으로 전년 대비 8.9% 감소했다. 특히 단행본 출판사 부문(203개사)의 평균 영업이익은 7300만원으로 전년 대비 3.4%, 교육 부문(26개사)은 2억2100만원으로 9.6% 감소에 그쳤지만, 학술·전문 부문(38개사) 평균 영업이익은 1억900만원으로 전년 대비 23.7%나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협은 “현재 불법 복제 스캔 문제, 도서관의 학술 교재서적 구입예산 감소 등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술 전문서적 출판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지난해 자녀 교육을 위한 ‘아동’ 분야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발행 종수와 부수가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출협의 ‘2023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출협에 납본된 신간 발행 종수는 2020년 6만5792종에서 2021년 6만4657종, 2022년 6만1181종으로 지속해서 줄고 있다. 신간 발행 부수 역시 2018년 1억174만부에서 2023년 7021만부로 주는 등 2001년 이후 22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출판 빙하기가 장기화하고 구조화하고 있는 데에는 여러 원인과 배경이 거론된다. 무엇보다 책을 읽은 독서 인구의 감소가 거론된다. 유튜브, 웹툰 등 책 이외의 콘텐츠 유통과 소비가 급격히 늘면서, 오프라인 책을 읽는 독서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다. 아울러 책 판매와 홍보 채널도 기존에는 서점에만 의존했지만 최근엔 블로그와 유튜브, 쇼핑몰, 포털 등 거의 무한대로 다양해지고 늘어나면서 기존 출판사와 서점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여기에 정부의 정책적 무관심과 지원 부족도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출판계에 따르면, 올해 출판산업 지원 관련 예산은 429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45억원이 감소했다. 국고보조금 문제를 놓고선 출협과 갈등도 이어가고 있다. 한국 정부의 모습은 “멸종 위기종이 되기 전에 (출판 및 서점 지원을) 추진해 갈 것”이라며 지난 6월 각의에서 파격적인 활자 문화 진흥책과 서점 활성화 대책을 마련해 실시하기로 한 이웃 일본 정부의 모습과는 크게 대비된다.

 

◆영역 파괴, 다양한 편집·판매 혁신 시도

출판사와 서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출판 빙하기를 넘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우선, 학술서와 단행본의 경계를 허무는 등 출판사들은 기존 주력 분야나 영역을 넘어서 경계를 파괴하고 도전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내 대표적 학술·전문 출판사인 한울은 최근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를 비롯해 해외 유명 시인들의 시선집 8권을 ‘한울세계시인선’ 시리즈로 번역 출간하면서 문학출판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출판계 안팎에선 한울이 그동안 학술출판만 고집해 왔다는 점에서 최근의 움직임은 놀랍다는 반응이다. 한 출판 관계자는 “한울의 시도는 출판 불황을 넘어서려는 출판사들의 변신 몸부림을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평했다.

편집과 판매 혁신을 시도하는 움직임도 곳곳에서 포착된다. 다양한 계기나 사연을 활용해 개정판이나 리마스터판 출간으로 붐업을 다시 시도하기도 한다. 국내 대표 출판사 창비는 올해 초 넷플릭스가 영화 ‘로기완’을 개봉한 것을 계기로 원작인 조해진의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의 개정판을 출간하기도 했다.

출판사 열린책들의 경우 최근 정가 8800원짜리 세계문학 시리즈 ‘모노 에디션’ 10종을 출간했다. 책날개를 없애고 책 표지도 하드커버가 아니라 소프트커버로 택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줄여 온라인 서점의 10% 할인까지 적용하면 8000원도 안 되는 금액에 괴테나 톨스토이, 조지 오웰 등 세계 유명 작가의 고전을 읽어볼 수 있도록 했다.

 

사진=민음사의 ‘민음사TV’ 유튜브 캡처

◆무재고 출판, 소통 강화… MZ세대 유인

수요를 현실적으로 감안해 재고를 확 줄이는 대신, 판매 채널을 다양하게 하는 혁신도 시도되고 있다. 대표적 사회과학 출판사 커뮤니케이션북스는 ‘무재고 출판’을 목표로 주문에 따라 인쇄하는 POD(Printing on Demand) 방식을 통해서 재고 없이 다양한 책을 펴내고 있다. 대신 사옥의 지하에 녹음실을 마련해 오디오북을 제작하는 등 거의 모든 책에 대해 큰글자책과 함께 전자책, 오디오북을 동시에 펴내 채널도 다양화했다.

기존 북클럽에 유튜브 운영을 통해서 영상 세대와 소통을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세계문학’ 시리즈로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민음사는 세계문학 시리즈를 중심으로 북클럽을 내실 있게 운영해오는 한편, 자체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영상 세대와 소통을 적극 시도하고 있다. 창비와 문학동네 등 국내 유수의 출판사들 역사도 영상 세대와의 소통 강화를 위해서 속속 유튜브 운영에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MZ세대를 새 독서인구로 끌어오기 위한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다산북스는 MZ세대의 주요한 플랫폼으로 자리 잡은 유튜브에서 작가와 콘텐츠를 적극 발굴하는 방식으로 MZ세대와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김선식 다산북스 대표는 “독서 시장에서 그동안 핵심 타깃은 40~50대였는데, 지금 새로운 MZ세대가 급부상하고 있다”며 “MZ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려고 적극 시도 중”이라고 귀띔했다.

서점업계 역시 단순히 책 판매를 넘어서 오리지널 콘텐츠 발굴을 통한 경쟁력 강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국내 대표적 서점인 교보문고는 2022년부터 신인 작가와 새 콘텐츠 발굴을 위해서 연재부터 출간까지 원스톱으로 창작을 지원하는 플랫폼 ‘창작의 날씨’를, 알라딘은 지난해 초 ‘투비컨티뉴드’를 각각 선보였다. 밀리의서재의 경우 ‘밀리로드’를 운영 중이다. 교보문고 측은 “창작가와 독자가 함께 작품을 만드는 공간을 지향하며, 이를 통해 작가의 성장과 성공을 돕는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전환, 콘텐츠 혁신 등 과제 첩첩산중

출판사와 서점들의 분투에서 구조적인 ‘출판 빙하기’를 넘어서기 위해선 출판가와 정부, 한국 사회가 모두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먼저 출판사와 서점이 스스로 디지털 전환이라는 시대적 변화를 과감하게 수용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출판 불황기임에도 디지털 전환을 선도해온 밀리의서재가 지난해 영업이익 104억원을 기록, 전년도(41억원)보다 149.6% 증가한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새로운 독서 인구를 발굴하고 늘려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한국은 어린이나 청소년보다 어른이나 성인들의 독서가 무엇보다 부족한 상황”이라며 “정부가 앞장서서 독서클럽 육성이나 각종 동아리 지원, 사내 도서관 운용 등 선진국들에서 적극 시도하고 있는 독서 인구를 늘리는 방법을 찾고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제도 교육에서도 독서의 가치를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다산북스 김 대표는 “현재처럼 교육에서 책읽기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입시에서 점수를 조금 더 잘 받기 위한 방식으로만 활용된다면, 지금 교육과 출판 현장에서 벌어지는 악순환은 벗어나기 힘들다”며 “종합적이고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선 교육과 책읽기를 결합하는 방식을 모색해야 하고, 이 같은 대전환을 정부가 적극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본적으로 출판사와 서점들이 개성 있고 의미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독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모였다. 한국출판학회 부회장인 김경도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책임교수는 “결국 새로운 이야기, 킬러 콘텐츠를 꾸준히 발굴해 소개하는 혁신이 핵심이고, 이를 위해선 인력을 꾸준히 키우고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도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소명출판 박성모 대표는 “연구나 사회적 자산으로 반드시 축적해야 하는 고전이나 인문학술서의 경우 수요가 수십 권에 불과한 경우도 적지 않는데, 이것은 시장 경쟁에만 맡겨둬선 안 되고 정부나 사회의 전략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